1820년은 멕시코가 스페인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 독립 국가로 나아가기 직전의 격동적인 해였습니다. 스페인 본토의 정치적 격변이 대서양 건너 식민지 누에바에스파냐(멕시코의 옛 이름)까지 번지면서, 이 지역의 정치 지형은 급속히 재편되었습니다. 이 해에 일어난 핵심 사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 스페인 본토의 리에고 혁명
1820년 1월, 스페인 장교 라파엘 델 리에고가 이끄는 군대 반란이 성공하면서 페르난도 7세 국왕은 1812년 카디스 헌법을 재차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페인은 입헌군주제로 전환했고, 이 소식은 식민지 지배층에 즉각적인 충격을 안겼습니다.
2. 카디스 헌법의 식민지 적용과 보수 세력의 동요
1820년 5월 31일, 부왕 후안 루이스 데 아포다카는 누에바에스파냐에서도 카디스 헌법을 공식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와 보수 귀족들은 자유주의 개혁이 자신들의 특권을 침해할 것을 크게 우려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위기감이 보수 엘리트들을 독립 진영으로 돌아서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 프로페사 음모와 비밀 결사 활동
원래 1808년에 조직된 '프로페사 음모(Conspiración de la Profesa)'에 연루된 인사들을 중심으로, 보수파들은 자유주의 헌법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페인과의 분리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스페인군의 고위 장교였던 크레올 출신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 역시 이런 모임에 참여하며 독립 구상을 키워갔습니다.
4. 이투르비데의 남부 원정과 게레로와의 접촉
같은 해 말, 부왕은 오랫동안 저항해 온 반군 지도자 빈센테 게레로를 토벌하기 위해 이투르비데를 남부로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이투르비데는 오히려 게레로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협력 가능성을 탐색했고, 이 접촉은 곧 멕시코 독립 선언의 결정적인 초석이 되었습니다.
5. 이괄라 플랜 선포와 카우디요들의 참여
1821년 2월 24일, 이투르비데는 '이괄라 플랜(Plan de Iguala)'을 발표하며 세 가지 보장, 즉 멕시코의 독립, 가톨릭 신앙의 유지, 사회적·인종적 배경과 무관한 모든 멕시코인의 통합을 제시했습니다. 이 플랜은 독립 운동의 구심점이 되었고, 각지의 군 사령관(카우디요)들이 부하 병력과 함께 스페인 왕실에서 독립 진영으로 손을 바꿔 들면서 운동은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6. 코르도바 조약과 멕시코시티 입성
1821년 8월 24일, 이투르비데는 스페인 측 대표와 코르도바 조약을 체결하여 멕시코의 독립을 공식 인정받았습니다. 이어 같은 해 9월 27일에는 이투르비데가 이끄는 '3개 보장군'이 멕시코시티에 개선 입성했습니다. 부왕 아포다카는 이미 사임한 상태였고, 스페인의 식민 통치는 사실상 붕괴했습니다.
7. 잠정 정부 수립과 제1제국의 탄생
부왕 체제에 대체하여 새로운 통치 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이투르비데가 그 수반으로 임명되어 독립 국가 멕시코의 정치 구조를 설계하는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822년 5월 이투르비데는 황제 아구스틴 1세로 즉위하며 멕시코 제1제국이 공식 출범했습니다.
이처럼 1820년의 연쇄적인 사건들은 1821년 9월의 정식 독립 선언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스페인 본토의 혁명, 식민지 내부의 균열, 그리고 이투르비데와 게레로의 예상치 못한 동맹이 맞물리며, 멕시코는 약 300년에 걸친 식민 통치에 종지부를 찍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