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독일 석유의 역사: '검은 금'이 황무지에서 채굴되던 시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에너지원으로서 석유가 여전히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북부 독일에도 석유 매장지가 있습니다. 무려 160년 전, 미국보다 앞서 황무지에서 석유가 채굴되기 시작한 곳입니다.

글: 이레네 알텐뮐러(Irene Altenmüller)

오늘날에도 상당한 양의 원유와 천연가스가 독일 지하에 저장되어 있으며, 대부분은 니더작센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에 분포합니다. 가장 중요한 저류층은 바덴해(Wadden Sea)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미텔플라테(Mittelplate) 시추·생산 인공섬에서는 매년 최대 100만 톤의 석유를 생산하며, 니더작센 육상 유전에서도 연간 약 58만 톤이 채굴됩니다.

독일의 석유 생산량: 국내 수요의 2% 미만

2020년 기준 독일산 원유 생산량은 약 190만 톤으로, 국내 총 수요 약 9,600만 톤의 2%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독일의 석유 생산량은 연간 최대 800만 톤을 기록했던 1960년대 이후 꾸준히 감소해 왔습니다. 그러나 천연가스·석유·지구에너지 연방협회(BVEG)에 따르면 독일의 매장량은 결코 고갈되지 않습니다. 매장량이 고갈된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원유의 40% 이상이 지하에 남아 있으며, 그중 일부는 향후 새로운 기술로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석유 생산지: 비체(Wietze)

독일의 석유 생산 역사는 18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지질학자 콘라트 후네우스(Konrad Hunäus)는 히스 남부의 작은 마을 비체에서 석유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미국 최초의 유정이 시추되기 몇 달 전, 세계 최초의 유정 중 하나가 이곳에 건설된 것입니다.

1900년경: 남부 황야에 몰아친 석유 붐

세기가 바뀌던 무렵, 남부 황야의 농촌 마을이었던 비체는 석유 개척자들에게 엘도라도처럼 변모했습니다.

1875년부터 시추 활동이 확대되었고, 1899년에는 불과 140미터 깊이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며 본격적인 산업용 석유 생산이 시작되었습니다. 진정한 석유 러시가 작은 농촌 마을을 휩쓸었습니다. 수십 개의 데릭이 우뚝 서고 수백 명의 노동자가 비체로 몰려들었으며, 농부들은 토지를 팔아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1903년에는 비체에 석유 운송용 철도역과 '대륙 최대 규모의 석유 저장탱크'가 들어섰습니다. 1905년에는 32개의 석유 회사가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같은 해 거의 참사가 벌어질 뻔했습니다. 데릭에 불이 붙으면서 강풍을 타고 인근 석유 드럼통과 주유전으로 번질 위험이 있었지만, 직원들이 간신히 불을 끄는 데 성공했습니다.

1963년: 비체의 석유 생산 종료

1909년 비체의 매장량은 연간 113,518톤이라는 최대 생산량을 기록했으며, 이는 당시 독일 전체 석유 생산량의 약 80%에 해당하는 수치였습니다. 생산은 수십 년간 이어졌으나 1963년에야 중단되었습니다. 해외 석유가 더 저렴해졌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시설과 건물이 남았고, 그중 일부는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습니다. 1970년부터는 석유 박물관이 농촌 마을 비체에 과거의 석유 러시를 생생하게 재현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니더작센 뤼레(Rühle):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유전

니더작센 부르탕거 호숫지(Bourtanger Moor) 한가운데 위치한 뤼레 유전은 지금도 상당한 양의 원유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1949년 이곳에서 '검은 금'이 발견되었으며, 이 유전은 현재까지도 미텔플라테에 이어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석유 매장지입니다. 지금까지 약 3,500만 톤의 석유가 생산되었으며, 약 1억 톤이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석유 혈암 채굴에서 시작되다

미텔플라테 유전은 오늘날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석유 매장지입니다.

1870년경 니더작센 비체에서 석유 혈암(오일 셰일)이 채굴되던 무렵, 오늘날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헤밍슈테트(Hemmingstedt) 인근에서도 디트마르셴 지역의 한 농부가 자신의 땅에서 기름진 흙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액체 상태의 석유 매장지는 한참 뒤에야 확인되었습니다. 1935년에는 깊이 2,400미터 지점에서 유전이 발견되어 잠시 독일에서 세 번째로 큰 유전으로 성장했습니다. 당시 나치 정권에게 유전은 매우 중요한 자원이었으며, 1940년 전쟁 중에는 생산량이 20만 톤을 넘어섰습니다.

미텔플라테: 바덴해 아래에 잠든 석유

1987년부터 바덴해 국립공원 남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미텔플라테에서는 매년 약 100만~200만 톤의 석유를 지표로 끌어올려 왔습니다. 이는 민감한 자연 경관의 훼손을 우려하는 바덴해 환경보호 단체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그러나 석유 생산 인공섬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인 1985년에 이미 허가를 받아 기득권(그랜드파더 클로즈)을 누리고 있습니다. 2010년에는 석유 생산 허가가 2041년까지 연장되었습니다.

함부르크의 석유: 라이트브룩과 메켈펠트

키르히베르더(Kirchwerder)에 서 있는 여러 기울어진 말머리 펌프는 함부르크의 석유 생산 역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함부르크에도 자체적인 석유 매장지가 있습니다. 피어운트마르슬란덴(Vier- und Marschlanden) 지구 지하 깊은 곳의 라이트브룩(Reitbrook)에는 '검은 금'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1937년 최대 800미터 깊이에서 광상이 발견되면서 채굴이 시작되었고, 1940년에는 연간 생산량이 35만 톤에 달했습니다. 2013년까지 약 260만 톤이 지하에서 추출되었습니다. 생산량을 다시 늘리려는 후속 계획은 아직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메켈펠트(Meckelfeld)와 신스토르프(Sinstorf) 인근에도 다른 매장지가 있으나, 행정 구역상 함부르크 시에 일부만 속합니다. 이곳저곳에 전형적인 말머리 펌프가 과거 석유 생산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1960년대, 포어포메른(Vorpommern)의 석유 산업 진출

현재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지역의 석유 생산은 훨씬 늦게 시작되었지만,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연방주에서 가장 큰 매장지는 우제돔(Usedom)의 뤼토우(Lütow) 인근이며, 슈트랄준트(Stralsund)와 그라이프스발트(Greifswald) 사이의 키르히도르프메젠하겐(Kirchdorf-Mesekenhagen)이 그 뒤를 따릅니다. 1960년대 동독은 소련산 석유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기에 자체 생산 기반을 갖추어 더 큰 독립성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초기에는 뤼토우에서 하루 최대 1,000톤의 석유를 추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매장량이 대부분 고갈되면서 연간 생산량은 수천 톤 수준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채굴 기업 넵튠 에너지(Neptune Energy)는 앞으로 생산량을 대폭 확대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