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1월 23일 밤,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Schleswig-Holstein)주의 고요한 '울렌슈피겔(Eulenspiegel) 마을' 묄른(Mölln)에서 극우 네오나치 청년들이 터키 가족의 집 두 곳에 불질을 해 터키 여성 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은 통일 독일 이후 처음으로 희생자가 발생한 인종차별 동기의 공격으로 기록되며, 독일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그날 밤 무슨 일이 벌어졌나
당시 19세의 라르스 C.(Lars C.)와 25세의 미하엘 P.(Michael P.)는 터키 가족이 거주하는 라체부르거 거리(Ratzeburger Straße)와 뮐렌 거리(Mühlenstraße)의 두 주택에 방화 장치를 던졌습니다. 뮐렌 거리의 집에서 불길에 갇힌 열 살 배기 예리즈 아를란(Yeliz Arslan), 열네 살 아이셰 일마즈(Ayşe Yılmaz), 그리고 할머니 바히데 아를란(Bahide Arslan, 당시 51세)이 숨졌고, 이 화재로 9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범행 직후 익명의 제보자는 경찰과 소방서에 불타는 집들을 신고하면서 "하일 히틀러(Heil Hitler)"라는 말로 전화를 끝냈습니다. 우익 스킨헤드 사건에 연루된 전력이 있던 두 용의자는 며칠 후 체포되었습니다.
만 명이 참석한 장례식, 전국적인 분노
묄른 공격 소식은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울렌슈피겔 마을'은 외국인 혐오 폭력의 상징이 되어버렸습니다. 독일 전역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우익 극단주의에 맞서는 시위에 나섰으며, 같은 해 11월 27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희생자 장례식에는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특히 연방검찰청이 이 방화 공격 수사를 직접 맡은 것은 이례적인 조치였습니다. 당시 연방검찰총장 알렉산더 폰 슈탈(Alexander von Stahl)은 공격이 "독일연방공화국의 내부 안보를 침해하려는 의도"로 자행되었다며 이 결정을 정당화했습니다.
'사건 연쇄'의 한 단면
묄른의 비극은 독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불과 3개월 전인 1992년 8월, 로스토크-리히텐하겐(Rostock-Lichtenhagen)에서는 우익 폭도 수백 명이 과밀 수용된 망명 신청자 숙소를 포위하고 방화 장치를 던지는 폭동이 벌어져 전 국가에 공포를 안겼고, 그로부터 1년 전에는 작센주 호이에르스베르다(Hoyerswerda)의 외국인 숙소가 방화 장치와 쇠구슬로 공격을 받아 다수가 부상을 입었습니다.
통일 이후 우익 극단주의 정당들은 선거에서 약진을 거듭했고, 망명 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도 극단으로 흘러갔습니다. 얀 비겔스(Jan Wiegels) 시장은 훗날 "묄른은 단독 사건이 아니라 일련의 사건 연쇄의 일부였다"고 회고했습니다.
소수민족에 대한 폭력, 새로운 국면으로
묄른 공격은 독일 내 소수민족에 대한 폭력이 완전히 새로운 차원에 진입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반년도 지나지 않은 1993년 5월 29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졸링겐(Solingen)에서 또다시 방화 테러가 발생해 5명이 목숨을 잃으면서 비극은 반복되었습니다.
이 시기 많은 터키계 독일인들은 '독일이 과연 우리의 조국이 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했습니다. 묄른 화재 현장의 주민들은 수십 년간 독일에서 삶을 이어온 이들이었고, 희생된 소녀 중 한 명은 독일 출생이었으며, 다른 소녀는 할머니를 만나러 온 손님이었습니다.
과거와 마주한 묄른: 재판과 기억의 장
공격 이후 묄른 시는 극우 행각을 오랫동안 방관했다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결국 가해자 두 명의 우익 성향이 지역 사회에 이미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1993년 12월 8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고등지방법원은 미하엘 P.에게 3건의 살인 및 다수의 살인 미수 혐의로 종신형을, 라르스 C.에게는 소년법에 따라 징역 10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두 피고인이 단순히 두 집의 화재를 묵인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의도하고 실행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두 가해자는 훗날 석방되었습니다. 라르스 C.는 2000년에, 미하엘 P.는 2007년에 출소했습니다.
그 이후로 '묄른'이라는 이름은 이 공격과 함께 기억되고 있으며, 도시는 역사상 이 어두운 장을 적극적으로 직면하고 있습니다. 뮐렌 거리 소방서 벽에는 추모 명판이 부착되어 있고, 양식화된 불꽃 모양의 나무 기둥이 그날의 비극을 되새기게 합니다. 해당 건물에는 희생자인 바히데 아를란의 이름이 헌정되었습니다.
'함께 살기' 협회와 국제 공동체를 향한 노력
공격 직후 지역 내 독일인과 외국인의 공존을 증진하기 위해 '함께 살기(Miteinander Leben)' 협회가 설립되었습니다. 협회는 극우 극단주의에 관한 교육 활동을 펼치며 젊은 세대가 민주주의적 삶의 태도를 갖도록 돕고 있습니다.
시 당국 역시 주민들이 다시 안전함을 느낄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 왔습니다. 비겔스 시장은 터키 공동체와의 우호 관계를 유지하며 평화롭고 국제적인 도시를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2017년 희생자 추모 25주기를 맞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은 우리가 특별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992년과 같은 끔찍한 사건, 특히 우리 도시에서는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