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1998년 4월 9일, 독일 최초 대량 유전자 검사: 1만 6,400명의 DNA가 밝혀낸 연쇄살인범

1998년에 채취된 이 샘플들은 오늘날까지도 독일 수사 역사상 최대 규모의 유전자(DNA) 검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끔찍한 살인 사건은 1998년 4월 9일, 독일 범죄 수사 역사상 최초의 대량 유전자 검사라는 새로운 장을 열며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주 전인 1998년 3월 16일, 클로펜부르크 지역 슈트뤼클링겐에 살던 11세 소녀 크리스티나가 납치된 뒤 살해당했습니다. 사건을 접한 수사 당국은 과감한 결정을 내립니다. 바로 당시로선 파격적인 수사 기법, '대량 DNA 검사'였습니다. 10주 후, 경찰은 해당 지역 18세부터 30세까지의 모든 남성에게 자발적인 DNA 샘플 제출을 요청했고, 약 16,400명의 남성이 타액 검사에 응했습니다. 그리고 5월 말, 드디어 구원의 소식이 울려 퍼졌습니다. 샘플 번호 3889의 DNA가 범인이 현장에 남긴 흔적과 정확히 일치했고, 이미 전과가 있는 세 자녀의 아버지 로니 리켄(Ronny Rieken)은 잔디를 깎던 중 체포되었습니다.

성공적인 수색인가, 아니면 경찰 업무의 실수인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 방식은 수사관들에게 커다란 성과를 안겨주었지만, 한편으로는 "기존 경찰 업무만으로도 비용이 많이 드는 대량 DNA 분석 없이 가해자를 찾아낼 수 있었던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빠르게 제기되었습니다. 실제로 리켄은 재산범죄로 경찰에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지만, 1990년 자신의 17세 여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크리스티나 살해 이후, 가족 내 아버지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정보는 이미 주민들 사이에 퍼져 있었고, 범행 당시 리켄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도 없었습니다.

경찰이 가해자를 더 일찍 찾아내지 못한 결정적 원인은 올덴부르크 경찰서의 행정 착오였습니다. 담당 부서는 성범죄자 등록부에 리켄의 데이터를 입력하지 않았습니다. 수사관들이 가족에게 알리바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조차 그의 범죄 기록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으며, 리켄은 이미 타액 샘플을 제출한 상태였기 때문에 경찰은 처음에는 그를 의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연쇄범죄자, 추가 살인 자백

체포 당일 리켄은 11세 크리스티나를 학대하고 살해했으며, 다른 소녀 한 명을 학대했다는 사실까지 자백했습니다. 두 건 모두 DNA 증거가 결정적인 물증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이 지역에서 발생한 다른 아동 학대 사건들의 배후 역시 리켄일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또 한 건의 살인 사건이 같은 패턴을 보였습니다. 제델로(Jeddeloh) 출신 13세 소녀 울리케(Ulrike)는 1996년 여름, 조랑말이 끄는 마차를 몰고 외출했다가 홀로 남겨졌습니다. 말들은 혼자서 돌아왔습니다.

리켄은 '치료 불가능한' 존재로 판명

딸이 실종된 지 2년 후, 울리케의 부모는 슬픈 확신에 도달하게 됩니다. 구금된 지 몇 주 만에 리켄은 13세 소녀를 살해했다고 자백하고, 경찰관들을 직접 시신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습니다. 1998년 11월 27일, 올덴부르크 지방법원은 리켄에게 두 건의 살인과 14명의 소녀들을 학대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했습니다. 판사들은 유죄의 '특별한 중대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리켄은 적어도 2021년까지 첼레 교도소에 수감될 예정이며, 그 이후에도 석방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그를 치료 불가능한 성범죄자로 평가합니다. 몇 년 전 리켄은 옥중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아마도 14일이 지나면 나는 다시 재발할 것입니다."

약 16,400명이 참여한 대량 유전자 검사, DNA 데이터베이스 도입의 계기

독일 최초의 대량 유전자 검사는 또 하나의 중요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바로 전국 단위 DNA 데이터베이스의 구축입니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이후 수많은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가장 극적인 사례 중 하나는 2005년 뮌헨 패션계 거장 루돌프 무샤머(Rudolf Mooshammer) 살해 사건으로, 살인범의 DNA가 이미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단 이틀 만에 사건이 해결되었습니다. 반면 지난 10년간 반복적으로 시행된 대규모 DNA 검사 상당수는 용의자를 찾지 못하는 결과로 끝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