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뜨거운 화물: 고리레벤으로 향한 최초의 카스터(CASTOR) 운송

1995년 4월, 니더작센주 벤들란드의 수천 명 시위대가 좌식 농성 등을 통해 고리레벤(Gorleben)행 카스터 운송을 막으려 했습니다.

"독일이 발칵 뒤집혔다." 취리히 신보(Neue Zürcher Zeitung)는 25년 전 니더작센주 고리레벤으로 향한 첫 카스터 운송 이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럴 만도 했습니다. 좌식 농성, 불타는 짚단, 분노한 활동가들, 절박에 빠진 농민들, 압도당하는 경찰관들 — 바덴뷔르템베르크주 필립스부르크 원자력발전소에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실어 나른 첫 번째 카스터 운송은 무려 21시간 동안 온 나라를 긴장 속에 묶어두었습니다. 1995년 4월 25일 오전 10시 30분, 화물은 임시저장소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이 싸움은 거리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치판 역시 뜨거었습니다.

고리레벤, 폭발적인 정치 현안

활동가들은 포스터를 통해 고리레벤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1977년, 니더작센 동부의 고리레벤이 정치 무대에 등장합니다. 구 동독 국경 근처에 위치한 인구 희박한 작은 마을이 '핵폐기물 처분 센터'의 예정 부지로 지정된 것입니다. 이곳에는 재처리 공장과 핵폐기물 최종저장소가 들어설 계획이었습니다. 고리레벤은 폭발적인 정치 현안이 되었고, 핵폐기물 처분이라는 난제를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1983년에는 소위 '수송용기 저장시설', 즉 지상형 콘크리트 홀이 완공됩니다. 본격적인 저장소가 마련될 때까지 향후 수십 년간 핵폐기물이 이곳에 보관될 예정이었습니다.

안전 우려는 압박과 법 앞에 무릎 꿇다

첫 카스터가 고리레벤을 향해 굴러가기까지는 한참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연방정부와 니더작센 주정부 간의 논쟁이 운송을 계속 지연시켰습니다. 1994년 여름, 연방방사선방호청은 카를스루에 인근 필립스부르크 원전의 핵폐기물 용기를 저장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특히 니더작센 환경장관이자 전직 그린피스 활동가인 모니카 그리프안(Monika Griefahn, SPD)은 안전 문제를 제기하며 운송 중단을 추진했지만, 결국 정치적 압박과 사법 판결 앞에 물러서야 했습니다.

첫 카스터 운송은 1994년 11월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카스터가 규정에 따라 적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뤼네부르크 행정법원이 마지막 순간에 운송을 저지했습니다. "어느 주방에서든 케이크를 굽다 보면 베이킹파우더 양이 어긋날 수 있는 법이죠" — 당시 신임 연방환경장관 안겔라 메르켈(CDU)은 안전 우려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고 그린피스 매거진이 전했습니다.

메르켈, 슈뢰더를 굴복시키다

1995년, 당시 연방환경장관이던 안겔라 메르켈이 고리레벤의 탐사 갱도를 방문한 모습.

1995년 2월, 안겔라 메르켈은 결국 니더작센 환경부에 고리레벤 카스터 운송을 허용하도록 강제했습니다. 수차례의 공방 끝에 주정부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에게는 단 한 번의 의심조차 없었습니다"라며 니더작센 주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SPD)는 훗날 자신에게서 총리 자리를 빼앗게 될 그 여성을 분노에 차서 비난했습니다.

전후 최대 규모의 경찰 작전

한편 독일의 반원자력 운동은 부흥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환경 운동가들은 몇 달 전부터 시위를 벌이며 데모와 도로 봉쇄를 조직했습니다. 때로는 철길 일부를 절단하는 등 급진적인 행동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반핵 세력은 비폭력 저항에 의지했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유지하겠습니다"라며 뤼호프담베르크(Lüchow-Dannenberg) 시민이니셔티브는 미리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노란색 'X'는 반원자력 진영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폭력적인 반핵 활동가들의 움직임까지 통제할 수는 없었습니다. 경찰 역시 대규모 저항을 예상하고 'X의 날(Day X)'을 위해 니더작센, 헤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바이에른, 베를린에서 수천 명의 경찰관과 연방국경경비대 요원을 동원했습니다. 약 1만 5천 명의 경찰력이 투입된 첫 카스터 운송은 전후 최대 규모의 경찰 작전이 되었습니다.

4월 24일 출발 신호 — 활동가들은 이미 준비 완료

1995년 4월 24일 오후 8시 5분, 드디어 그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카스터 운송이 필립스부르크 원전을 출발한 것입니다. 파란 방수포 아래에는 사용후핵연료봉 9개를 실은 120톤짜리 카스터가 있었습니다.

열차는 니더작센주 단넨베르크(Dannenberg)까지 700km가 넘는 길을 달립니다. 북쪽으로 갈수록 사건은 잦아졌습니다. 나무통나무는 물론 사람들이 선로를 막았고, 활동가들은 갈고리를 사용해 기관차의 집전장치를 잡으려 시도했습니다. 라인마인 지역에서는 통근 열차 운행이 한 시간 동안 마비되기도 했습니다. 울첸에서 단넨베르크로 이어지는 마지막 구간에서는 침목 밑이 파헤쳐지고 레일이 톱으로 잘렸습니다.

14시간의 철도 여정 끝에 열차는 4월 25일 오전 10시 30분 단넨베르크 적재역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뜨거운 화물은 트럭에 옮겨 실렸고, 트럭은 정오 무렵 마지막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불과 18km의 구간을 주파하는 데 6시간 이상이 걸렸습니다. 수백 명의 경찰관이 뛰면서 양옆을 호위하는 가운데 운송은 느릿느릿 나아갔습니다.

비상사태에 빠진 고리레벤

1995년 4월 단넨베르크의 좌식 농성: 경찰은 시위대를 직접 실어 나르야 했습니다.

4월 25일, 고리레벤은 완전한 비상사태에 돌입했습니다. 모든 학교가 문을 닫았고, 농민들은 트랙터로 시위 행진을 조직했습니다. 수천 명의 경찰과 수천 명의 시위대가 마주했습니다. 곳곳에서 "카스터를 멈춰라", "체르노빌은 핵 마피아의 스탈린그라드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펼쳐졌고, 사방에서 반핵 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 경찰기동대 대변인 알프레트 죄트베어(Alfred Soetbeer)는 이들을 "대체로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시민들"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운송을 막기 위해 활동가들은 트럭 경로상의 짚단과 자동차 타이어에 불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농민들은 나무를 베어 도로를 막았고, 가족 단위로 농성에 나섰습니다. 사람들은 거듭 몸을 던져 길을 막았고, 필요하면 강제로 실려 나가야 했습니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고무몽둥이와 물대포를 동원했고, 반대편은 돌팔매질로 맞섰습니다. 고리레벤 조사위원회가 후에 집계한 부상자는 35명, 일시 체포된 인원은 29명이었습니다.

오후 5시 12분, 트럭은 마침내 임시저장소 입구 게이트를 통과했습니다. 반핵 진영 또한 결국 카스터 운송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운송을 끝없이 지연시켜 비용을 불려나가는 것뿐이었고, 실제로 이후 고리레벤으로 향한 추가 카스터 운송에서도 그들은 같은 방식으로 저항을 이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