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1998년 '팔라스'호 참사: 북해를 뒤흔든 기름 유출 재앙의 전말

1998년 10월, 무인 화물선 한 척이 불길에 휩싸인 채 북해를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불타는 유령선의 이름은 '팔라스(Pallas)'. 이 배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앞바다 바덴해(Wattenmeer) 전역을 덮치는 환경 재앙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항해에서 시작된 비극

'팔라스'호는 1998년 10월 20일 스톡홀름 북쪽 스웨덴 항구 후딕스발(Hudiksvall)을 떠났습니다. 이탈리아 선적의 이 화물선은 제재목 2,500톤을 실어 스웨덴에서 모로코로 향하는 평범한 항해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길이 147미터의 이 배는 심각한 폭풍을 만났고, 높이 5미터에 달하는 북해의 파도를 헤쳐 나가고 있었습니다.

10월 25일 오후 2시 30분경, 상황이 급변합니다. 승무원들은 두 개의 화물 해치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발견했습니다.

10월 25일 밤 11시 54분, '팔라스'호의 메이데이 호출

선장은 진화에 나섰지만, 선창에서 솟아나는 연기는 갈수록 짙어졌습니다. 자정을 조금 앞두고 상황은 완전히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고, 마침내 밤 11시 54분 국제 조난 신호인 메이데이(Mayday)가 방송되었습니다. 덴마크와 독일의 구조 헬리콥터들이 불타는 화물선으로 급파되었습니다.

극한의 공중 구조 작전

갑판에서 승무원을 직접 구출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치솟는 화염과 격랑이 구조 작전을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승무원들은 구명정에 올랐지만, 구명정이 제대로 내려오지 못하고 기울어져 선체에 부딪혔습니다. 선원들은 이미 불타는 화물이 떠다니는 북해 바다로 떨어졌습니다.

이 사고로 승무원 다수가 중상을 입었고, 배의 요리사는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구조대원들은 헬리콥터에 모든 승무원을 수습할 때까지 거듭 와이어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불타는 유령선, 좌초하다

10월 26일 아침, 독일 당국은 불타는 화물선이 예인선 없이 질트(Sylt) 섬 방향으로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습니다. 이른 오후 독일 선박 4척이 난파선에 도착해 물과 소방 포말로 불을 진압했습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예인 시도는 줄이 끊어지며 실패했습니다. 서풍성 폭풍은 여전히 불타는 배를 해안 쪽으로 몰아붙였고, 얕은 waters에서는 지원 선박들조차 더 이상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결국 10월 29일, '팔라스'호는 암룸(Amrum) 섬 남서쪽에서 좌초되었습니다.

모든 구조 시도가 무너지다

다음 날에는 영국 예인선 두 척이 이탈리아 해운 회사 보자치(Bogazzi)를 대신해 배를 인양하려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사고 발생 약 2주 후, '팔라스'호의 선체에 비틀림과 균열이 생겨 기름이 새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난파선은 더 이상 안전하게 견인될 수 없었습니다. 북위 54도 32분, 동경 8도 17분 — 연료유·중유·윤활유 756톤을 실은 화물선의 최후 위치가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북해를 뒤덮은 20km의 기름 띠

피해의 규모는 하늘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수백 미터 폭의 기름 띠가 북해 해면 위로 거의 20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진 것입니다. 기름은 먼저 바다 쪽으로 표류하다가 이내 섬 해변에 닿았습니다. 처음에는 암룸과 푀어(Föhr), 이윽고 질트, 그리고 할리게 호오게(Hooge)와 랑게네스(Langeneß)까지 오염되었습니다.

소방관들과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해변의 기름층을 걷어내고 기름에 절은 새들을 구조했습니다. 특수 선박들은 바다의 기름을 가두고 펌핑해냈습니다. 총 450톤의 석유가 북해 해상, 난파선, 해변에서 회수되었습니다.

16,000마리 바닥새가 죽었다 — 역대 최악의 조류 참사

손상된 '팔라스'호는 11월 말에야 완전히 제거되었습니다. 국립공원 관리청이 집계한 죽은 바닷새의 수는 무려 16,000마리. 희생자 대부분은 오리와 검은큰부리오리(스코터)였습니다. 이 난파선은 독일 해안에서 기름 유출로 발생한 조류 폐사 중 가장 큰 규모의 참사로 기록되었습니다.

이후 수천 입방미터의 모래가 난파선 주변에 채워졌고, 탱크와 기관실에 남은 기름 잔여물은 특수 건축 자재로 고정 처리되었습니다. 약 1,000톤에 달하는 잔해는 지금도 암룸 섬 남서쪽 8km 지점, 수심 약 6미터의 해저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맑은 날 썰물 때면 섬 남단에서 육안으로 '팔라스'호의 유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재앙이 가져온 변화: 하바리코만도의 탄생

이 난파는 정치적으로도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의회 조사위원회가 이 재난을 면밀히 조사했고, 2000년에 나온 최종 보고서는 600페이지를 넘겼습니다. 보고서는 무엇보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구조 작업이 지연되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결과물이 2003년 출범한 연방·주 공동 기관 '하바리코만도(Havariekommando)'입니다. 이 기관은 그 이후 북해와 발트해에서 중대 해난사고가 발생하면 대응 작업을 총괄 조정하고 있습니다.


2018년 10월 25일 오전 8:08 기준

편집자 노트: 이 기사의 이전 버전에서는 CCME가 해상 구조 작업도 조정한다고 잘못 기술했습니다. 사실 해상 구조 작업은 여전히 독일 난파 구조 협회(German Society for Maritime Rescue)의 책임입니다. CCME는 전체 작전 지휘, 조난 선박 구조, 오염 물질 및 화재 진압, 부상자 치료 등을 담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