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그린피스, 독일 북부에서 환경 운동의 포문을 열다: 1980년부터 현재까지의 기록

1971년 9월 15일, 평화주의자들과 핵발전 반대론자들이 개조한 어선을 타고 알래스카 앞바다의 핵실험을 저지하려 나섰다. 이 행동에서 세계 최대 환경 단체 중 하나인 그린피스가 태동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설립된 그린피스는 9년 뒤인 1980년, 독일 북부에서 첫발을 내디뎠다.

첫 번째 행동: 크로노스호 저지 및 독성 폐기물 투기 반대

1980년 10월 13일, 소수의 환경운동가들이 베저강 하구 노르덴함에서 북해로 향하려던 폐기물 선박 '크로노스(Kronos)'호의 출항을 막았다. 이 배는 독일 및 국제 화학 기업들을 대신해 '희석산(verdünnte Säure)'이라는 독성 폐액을 북해에 버릴 예정이었다. 당시에는 합법적인 행위였으나, 이 폐액이 어류와 플랑크톤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바이어 공장 앞 죽은 물고기 투기: 어민과의 연대

그린피스 독일 창립 멤버인 게르하르트 발마이어(Gerhard Wallmeyer)는 훗날 "당시 엘베강 어부들은 잡은 물고기의 3분의 1을 병들어 버렸다며 다시 바다에 버려야 했다. 어민들은 독성 폐수 배출 문제로 이미 오래전부터 투쟁 중이었다"고 회고했다. 같은 날, 다른 활동가들은 기형적인 죽은 물고기들을 브룬스뷔텔의 바이어(Bayer) 화학 공장 앞과 함부르크 수로측량국 앞에 버렸다. 지역 언론이 이를 보도했으나, 전국 단위 언론은 처음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희석산(verdünnte Säure)'이란?

희석산은 희석된 황산으로, 표백제와 염료 제조 공정에서 부산물로 발생한다. 철과 광물 찌꺼기가 고농도로 포함되어 있으며, 비소, 납, 크롬, 카드뮴, 구리, 니켈, 티타늄, 아연 등 맹독성 중금속이 함유되기도 한다. 북해에 대한 희석산 투기는 1990년에 이르러서야 금지됐다.

두 번째 대규모 행동: 뵈링거 굴뚝 점거와 다이옥신 폭로

상황을 바꾼 것은 두 번째 주요 행동이었다. 두 명의 활동가가 함부르크-빌브루크의 뵈링거(Boehringer) 화학 공장 굴뚝에 올라가 다이옥신 등 초독성 물질의 무단 배출을 항의하는 현수막을 펼쳤다. 이 행동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메인 뉴스에서 여러 번 보도되었고, 굴뚝에 쇠사슬로 묶인 활동가들의 사진이 신문을 도배했다. 발마이어는 "그 후 우리 시민 단체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갑자기 자루 단위로 우편물이 쏟아졌다. 후원금, 수표, 회원 가입 신청서가 쇄도해 행정과 회계를 맡을 파트타임 직원을 처음 고용해야 했다"고 말했다.

"시대정신을 꿰뚫었다" - 발마이어의 회고

이후 그린피스의 행동들은 엄청난 미디어 조명을 받았다. 우연이 아니었다. 환경운동가들은 '이미지의 힘'을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거대한 배를 막아선 고무보트, 화학 공장의 명성을 실추시킨 굴뚝 등반가들. 그린피스는 "개인이라도 거대 권력에 맞서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했다. 발마이어는 "우리의 발상은 엄청난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광장에서 시위하는 것을 넘어, 직접적이고 비폭력적인 행동에 나서는 것이 당시의 시대정신과 부합했다"고 설명했다.

'벨루가(Beluga)'호로 강 오염 실태 조사, 실험실 선박의 활약

1980년대, 그린피스는 말 그대로 '하수구'로 변해버린 독일 강들의 오염과 맞섰다. 산업체는 독성 폐수를 아무런 제재 없이 방류했다. 발마이어는 "당시 고무보트를 타고 함부르크 항구 엘베강을 취재진과 함께 다니면 200~300m마다 하수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것은 노란색, 어떤 것은 보라색, 어떤 것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폐수를 뿜어내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배출 허가 사항이 비공개였기에, 실제 어떤 폐수가 버려지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직접 시료를 채취해 분석하는 것뿐이었다.

그린피스는 후원금으로 퇴역 소방정을 구입,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부유식 실험실 '벨루가'호로 개조했다. 이 배로 엘베강, 베저강, 라인강의 배출 지점에서 직접 시료를 채취해 분석했다. 발마이어는 "당시 실험실 선박을 운영한 곳은 우리뿐이었다. 관할 당국보다 장비가 더 좋았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대중 의식 변화와 구체적 해결책 제시: 프레온 없는 냉장고, 무염소 종이

그린피스는 연이은 환경 스캔들 폭로로 환경 오염 문제를 공론화하고 대중의 감수성을 일깨우는 데 성공했다. 발마이어는 "그것이 그린피스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의 의식이 변했다. 오염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희석산 투기 금지 등 구체적 성과도 많지만, 더 중요한 건 수많은 개인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대안도 제시했다. 1990년대에는 작센의 한 기업과 협력해 세계 최초 프레온(CFC) 프리 냉장고를 개발했다. 대기업들은 처음에 발명을 외면했으나, 소비자들이 친환경 제품을 선택해 구매하자 곧 모든 제조사가 프레온 프리 냉장고를 생산하게 됐다. 무염소 종이 캠페인 역시 소비자 파워를 활용해 기업을 변화시킨 성공 사례다.

브렌트 스파(Brent Spar) 점거: 소비자 보이콧의 위력과 홍보 위기

1995년, 활동가들은 쉘(Shell)사가 북해에 침몰시키려던 석유 저장·하역 플랫폼 '브렌트 스파'를 점거했다. 수주간 대치가 이어졌고, 그린피스는 쉘 주유소 보이콧을 호소했다. 매출이 최대 50% 급감하자 쉘은 백기를 들고 육상 폐기를 결정했다. 하지만 그린피스에는 홍보 재앙이 닥쳤다. 플랫폼 탱크 내 잔류 독성 물질량이 그린피스 주장보다 훨씬 적고, 쉘의 발표와 대체로 일치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환경 단체는 회사와 대중에게 사과했으나, 신뢰도에 타격을 입었다.

21세기의 과제: 기후 위기, 탈석탄, 아마존 보호

새 천년에도 그린피스의 전선은 넓어지고 있다. 최우선 과제는 기후 위기 대응이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가르츠바일러(Garzweiler) 갈탄 광산 등에서의 탈석탄 캠페인이 대표적. 마르틴 카이저(Martin Kaiser) 그린피스 독일 사무총장은 "늦어도 2030년까지 탈석탄을 관철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 청소년 기후 시위 지지, 교통 정책, 해양 보호, 무기 수출 반대,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 저지 등에도 힘쓴다. 2019년에는 브라질 아마존 산림과 사바나를 파괴해 재배한 대두를 독일 축산 농가에 수입하는 화물선에 올라 베저강에서 항의 행동을 벌이기도 했다.

비판과 논란: 과격한 행동, 비영리 지위 박탈, 2021년 뮌헨 스타디움 사건

반세기 넘게 화려한 캠페인으로 환경·자연·기후 보호를 외쳐온 그린피스는 비판의 대상이기도 하다. 고래와 포경선 사이 고무보트 시위 등 상징적 이미지는 세계를 돌았지만, 때로 너무 급진적이거나 불법적인 행동으로 비치기도 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비영리 법인 지위가 박탈되기도 했다. 2021년 6월, 유로 2020(2021년 개최) 개막전 당시 뮌헨 알리안츠 아레나에 동력 패러글라이더로 착륙을 시도하다 2명이 부상당한 사건은 큰 논란을 불렀다.

독립적 재정 기반: 순수 민간 후원으로 8,030만 유로 모금 (2020년)

그린피스는 정부, 정당, 기업의 돈을 일절 받지 않고 순수 개인 후원금으로만 운영된다. 최근 후원자 수가 급증해 2020년에는 63만 명 이상이 재정 후원을, 약 7,000명이 적극적 활동에 참여했다. 1980년 독일 지부 설립 이래 최대 규모다. 독일 내 모금액만 8,030만 유로에 달했다. 카이저 사무총장은 "수많은 후원자들이 기부금으로 조직에 안정성과 독립성을 부여한다. 기후 위기와 생물 다양성 위기라는 거대 과제 앞에서 이 독립성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