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볼프스부르크의 역사: 나치의 'KdF 자동차 도시'에서 폭스바겐 대도시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연합군은 'KdF 자동차 도시(Stadt des KdF-Wagens)'라는 나치식 명칭을 폐지하고 도시의 이름을 볼프스부르크로 변경했습니다. 이후 폭스바겐 생산 시설은 이곳을 명실상부한 VW의 중심 도시로 만들었고, 도시는 약 50년 전 대도시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볼프스부르크 하면 폭스바겐이 떠오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독일 어느 도시도 이처럼 하나의 기업과 운명처럼 얽혀 있지 않습니다. 사실 볼프스부르크의 뿌리는 자동차 제조사와 직결됩니다. 1938년 폭스바겐 공장이 설립되기 전만 해도 니더작센 동부의 이 일대는 몇 개 남은 농촌 마을이 전부였습니다. 당시 계획은 주민 100,000명 규모의 신도시를 조성해 팔러슬레벤(Fallersleben) 인근에 'KdF 자동차 도시'라는 이름으로 VW 비틀을 생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연합군은 나치의 흔적이 담긴 이름을 없애고자 했고, 1945년 5월 25일 도시는 '볼프스부르크'로 새롭게 명명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폭스바겐 공장의 군수품 생산

1938년 5월 26일, 나치는 팔러슬레벤 마을 인근에 폭스바겐 공장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그러나 비틀 생산보다 먼저 시작된 것은 무기 생산이었습니다.

1938년부터 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주택 건설이 진행되었지만, 현대적인 아우토슈타트(Autostadt)라는 꿈은 초기에는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폭스바겐 공장은 강제 노동자, 전쟁 포로,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을 동원해 군수품을 생산했습니다. 1945년 종전 무렵에는 시설의 약 3분의 2가 파괴되었지만 주거 지역은 비교적 온전히 남았습니다. 다만 석조 주택과 수많은 막사형 아파트를 모두 합쳐도 주택은 약 2,200채에 불과했습니다. 1945년 5월 25일, 연합군의 압력 아래 시의회는 '볼프스부르크'라는 새 이름을 확정했습니다. 이 이름은 1302년 문헌에 처음 기록된 알러 강변의 성(城)에서 유래합니다.

연합군의 승인, 재건의 시작

폭스바겐 회사 역사 연구자에 따르면, 1945년 12월 영국군정이 비틀 생산 재개를 결정하면서 도시와 회사 모두에 새로운 전환점이 열렸다고 합니다. 주민 35,000명 규모 도시를 위한 새로운 도시 계획이 등장했습니다.

동쪽에서 온 난민 유입으로 볼프스부르크는 빠르게 성장해 1952년에는 이미 주민 30,000명을 넘어섰습니다. 새로운 주거 지역, 학교, 병원, 시청이 잇달아 건설되었습니다. 자동차를 성공적으로 생산하던 폭스바겐 공장은 여전히 도시의 생명선이었습니다. 1955년 8월 5일에는 백만 번째 VW 비틀이 조립 라인에서 출고되었고, 1950년부터 양산이 시작된 VW Bulli 역시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럼에도 주민 약 55,000명 규모의 도시에 시청도 기차역도 없었다는 점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두 시설은 각각 1957년과 1958년에야 뒤따라 완공되었습니다.

일자리를 찾아 모여든 독일인과 이탈리아인

VW의 인력 수요는 계속 증가했습니다. 안정된 일자리와 좋은 임금은 독일 전역의 사람들을, 나아가 동독 국경 지역의 사람들까지 끌어들였습니다. 1960년대 초반부터는 많은 '손님 근로자(Gastarbeiter)'들이 이탈리아에서 이주해 왔습니다. 덕분에 볼프스부르크는 오늘날 알프스 북쪽에서 가장 큰 '이탈리아 도시'로 불립니다. 반면 폭스바겐에서 급여를 받는 사람이 모두 시내에 사는 것은 아닙니다. 수천 명이 주변 지역에서 통근하며, 일부는 브라운슈바이크나 하노버에서까지 출퇴근합니다.

역사가 빚은 도시 구조와 경관

1972년 지방자치단체 개혁으로 주변 20개 공동체와 마을이 볼프스부르크에 편입되면서 인구는 131,000명에 달했고, 도시는 정식 대도시로 성장했습니다. 현재 인구는 약 124,000명입니다. 다만 전반적으로 이 VW 도시가 살기에 매력적인 곳으로 평가받는 것은 아닙니다. 괴팅겐 같은 대학 도시 특유의 멋도, 매력적인 구시가지도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볼프스부르크라는 이름은 1945년 전쟁 이후 이 성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입니다.

역사는 도시의 구조와 경관을 그대로 새겨 놓았습니다. 성 외에 시내 중심가에는 역사적인 건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1950~60년대 주택이 도시의 풍경을 지배합니다. 성 크리스토포루스 가톨릭 교구 교회 역시 다른 도시라면 수백 년 된 건물이었을 교회답지 않게 1951년에 지어졌습니다. 반면 편입된 여러 지역은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이들 지역의 중심은 대부분 역사적인 반목조 주택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주변으로 전후 시기에 단독주택이 들어섰습니다. 면적 204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도시는 하노버와 면적이 비슷하지만 인구는 그 4분의 1에 불과합니다.

여전히 볼프스부르크를 지배하는 폭스바겐

볼프스부르크의 아우토슈타트에서는 자동차 구입 장면이 일상적인 풍경입니다.

오늘날 볼프스부르크가 폭스바겐 없이 존재하기 어렵듯, 이 자동차 제조업체는 여전히 도시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막대한 세금 수입이 지방 재정에 큰 보탬이 되는 한편, 수영장·극장·시청 같은 시설 건설에는 그룹이 정기적으로 직접 기부금을 지원합니다. 분데스리가 소속 VfL 볼프스부르크 축구단 역시 VW의 후원이 없었다면 최상위 리그에서 뛰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시 당국은 이러한 의존도를 낮추고 볼프스부르크를 관광 도시로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왔습니다. 그 결과 파에노(Phaeno) 과학센터, 미술관, 워터파크 같은 야심찬 프로젝트가 탄생했습니다. 2004년 주립 정원 박람회(State Garden Show) 때는 수만 명의 방문객이 도시를 찾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도시의 심장이자 중심은 여전히 폭스바겐 공장입니다. 공장은 보행자 구역과 성 사이 도심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텔란트 운하와 철도를 가로지르는 분주한 베를린 다리에서는 새 차량이 배송을 기다리는 두 개의 인상적인 유리 타워가 있는 폭스바겐 그룹의 아우토슈타트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초여름에 현대무용, 콘서트, 낭독회, 낮 공연이 어우러진 '모비멘토스(Movimentos)' 페스티벌 위크 같은 문화 행사와 기술 주제 전시회도 폭스바겐의 주관 아래 이곳에서 번갈아 개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