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로마 역사상 최악의 패배, 칸나에 전투 — 포위 섬멸 전술의 시작

로마 역사상 최악의 패배, 칸나에 전투 — 포위 섬멸 전술의 시작

칸나에 전투는 영어로 'Battle of Cannae'라고 표기하며, 문헌에 따라 '칸나이', '칸네' 등으로 다양하게 적습니다. 세계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이런 표기 문제인데, 일단 그것은 제쳐두고 로마 역사상 최악의 패전으로 남은 칸나에 전투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칸나에 전투 이전, 어떤 일이 있었나?

지중해의 시칠리아 문제에서 비롯된 제1차 포에니 전쟁이 끝난 지 약 22년 후, '한니발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제2차 포에니 전쟁이 발발합니다.

패전 장군 하밀카르 바르카의 아들이자, 평생을 로마 타도에 바치겠다고 다짐한 희대의 전략가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어 스페인에서 이탈리아 본토를 직접 공격하는 무모해 보이는 작전에 나섭니다.

로마 역사상 최악의 패배, 칸나에 전투 — 포위 섬멸 전술의 시작

기원전 3세기, 해발 2000m급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에 도착한 한니발은 티키누스 전투, 트레비아 전투, 트라시메노 호수 전투에서 압도적인 3연승을 거둡니다.

비상사태를 인식한 로마는 무려 32년 만에 처음으로 독재관(디크타토르)을 임명합니다.

독재관이 된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한니발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는 소모 전략을 채택하지만, 결전을 바라던 로마인들은 이에 강하게 반발합니다.

결국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사실상 물러난 막시무스를 대신해, 원로원은 여론에 밀려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와 가이우스 테렌티우스 바로를 집정관으로 임명합니다.

그리고 칸나에 전투의 막이 오릅니다.

병력은 압도적으로 로마가 우세했다

양측 병력은 기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로마군 약 7만 명, 카르타고군 약 5만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대 전쟁에서는 현대보다 병력 수가 훨씬 중요했습니다. 소수 정예만으로 적을 꺾기 어려운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한니발에게 패배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한니발은 이 전투의 승패를 가르는 열쇠가 '기병'임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분명 기병은 보병보다 강력하지만, 당시 로마에는 말이 부족했고 말을 능숙하게 다룰 기병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게다가 등자가 없던 시절이라 지금보다 기승이 훨씬 어려웠습니다.

한니발은 지중해 최강이라 불리던 누미디아 기병 약 1만 명을 이끌었고, 반면 로마 기병은 약 6천 명에 불과했습니다. 숫자와 질 모두에서 한니발이 압도적 우위를 점한 상태였습니다.

군단의 패배, 완벽한 포위 섬멸

흔히 그리스식 팔랑크스와 로마식 군단이 대비되곤 하는데, 둘 다 중장보병 덩어리가 돌진하는 충격 전술이 핵심이었고 당시 평원 전투에서는 사실상 무적이었습니다.

로마 역사상 최악의 패배, 칸나에 전투 — 포위 섬멸 전술의 시작

그러나 한니발은 그 '무적'을 정면으로 깨뜨립니다. 그는 로마군이 먼저 돌진하도록 유도했습니다.

한니발은 전투 초반 활처럼 휜 월형(半月形) 진형을 채택합니다. 로마군의 돌격이 중앙에 집중되도록 설계된 진형입니다.

로마 역사상 최악의 패배, 칸나에 전투 — 포위 섬멸 전술의 시작

군단의 돌격을 정면으로 받으면 보통 부대는 두 동강 나고 지휘 계통이 붕괴됩니다. 로마군은 주저 없이 중앙 부대로 돌진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함정이었습니다. 로마군의 돌격이 시작되자 한니발은 최전선 병력을 의도적으로 후퇴시켜 적을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동시에 양익에 배치한 누미디아 기병과 정예 기병이 준비를 마치고 로마군의 측면과 후방을 향해 돌입합니다.

돌격에 몰입한 로마군은 어느새 완벽하게 포위된 상태였습니다.

로마 역사상 최악의 패배, 칸나에 전투 — 포위 섬멸 전술의 시작

포위당한 로마군의 처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7만으로 불리던 병력은 급감해 1만 명 남짓만 살아남았고, 생존자 대부분은 포로로 잡혔습니다.

집정관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는 전사했고, 당시 원로원 의원 300명 중 80명이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반면 한니발 측 피해는 약 5천 명으로, 그 대부분은 갈리아 용병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럼에도 로마는 멸망하지 않았다

로마는 이보다 큰 손실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문자 그대로 절체절명의 패배였습니다. 보통의 국가라면 이 정도 타격을 입으면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는 보통의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이 위기 속에서 두 영웅이 로마를 구합니다. '로마의 방패' 파비우스 막시무스와 '로마의 검'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입니다.

그리고 한니발은 이 전투에서 자신이 천재 한 명을 놓쳤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 전투를 견습 장교 신분으로 목격한 젊은 병사는 한니발의 전술을 그대로 흡수했고, 훗날 한니발을 꺾습니다. 그 이름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훗날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라 불리는 로마의 영웅입니다.

진정한 패자는 누구일까요? 패배 직후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로마는 패배 직후 빠르게 회복했습니다. 아무리 몰려 있어도 즉각 행동하는 의지, 그것이 로마의 진정한 힘이었습니다. 역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로마는 한니발의 전술을 흡수해 훗날 아시아의 강국까지 무찔렀습니다.

패배를 알면 강해진다, 그것이 로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