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른베르크 재판: 국제법의 이정표, 그 의미와 한계
1945년 11월 20일 막을 올린 뉘른베르크 재판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를 법적·역사적으로 청산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승자의 재판'이라는 비판과 '국제형사법의 초석'이라는 평가 사이에서 이 재판은 무엇을 남겼을까요? 독일 현대사 연구의 권위자인 역사가 노르베르트 프라이(Norbert Frei)와의 인터뷰입니다.
프라이 박사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불과 몇 달 만에 개막한 뉘른베르크 재판은 국제법의 이정표로 평가받습니다. 뉘른베르크에서 헤이그까지 이어진 이 흐름, 과연 확실한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을까요?
노르베르트 프라이: 아니요, 단순한 성공 스토리는 아닙니다. 다만 뉘른베르크가 분명히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뉘른베르크 재판들'을 하나로 묶어 이야기하지만, 궁극적인 핵심 이정표는 어디까지나 본재판이었습니다. 이 재판은 연합국 4개국이 공동으로 진행한 진정한 의미의 국제군사재판이었던 반면, 그 뒤를 이은 후속 뉘른베르크 재판들은 미국이 단독으로 주관했다는 점에서 성격이 달랐습니다.
재판 절차의 모든 것이 그전에는 없던 새로운 것이었고, 매우 광범위한 언론 보도가 이루어졌기에 독일 국민을 포함해 전 세계가 재판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막 끝났고 독일은 여전히 폐허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재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나요? 당시 재판은 어떻게 받아들여졌습니까?
노르베르트 프라이: 이 질문은 곧바로 하나의 사실을 보여줍니다. 뉘른베르크는 단순한 재판이 아니었습니다. 나치 시대와 전쟁 기간 국가사회주의자들이 저지른 범죄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세계, 그리고 무엇보다 독일인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즉, 이 재판의 본질은 '계몽'에 있었습니다. 전례 없는 시도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피고인들에게 선고를 내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패전국 지도부를 향해 성급하게 재판을 끝내는 일은 없었고, 그들은 법정에서, 대중 앞에서, 온 세계 앞에서 스스로의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뉘른베르크 재판은 연방공화국이 나치 과거와 마주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노르베르트 프라이: 흥미로운 관찰이 가능합니다. 점령국, 특히 미국은 약 1년 가까이 이어진 이 재판에 독일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매우 세심하게 살폈습니다. 초기에는 상당한 의지와 폭넓은 동의가 있었습니다. '큰 자들이 결코 풀려나서는 안 되며, 작은 자들이 교수형에 처해서도 안 된다'는 원칙에 따른 처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재판과 후속 재판이 철저한 탈나치화, 나치 과거의 종합적 청산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하급 나치 간부들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제출해야 했던 소명 절차 앞에서 독일인들의 호응은 빠르게 식었습니다. 이윽고 독일에서는 '승자의 정의'라는 논조가 다시 퍼져나갔습니다. 뉘른베르크에 대한 태도는 이후 수십 년간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으며, 특히 이러한 재판에 오랫동안 회의적이었던 독일 법조계 내부에서 그러했습니다.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의 처리라는 측면에서, 뉘른베르크 판결은 독일 너머 세계에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노르베르트 프라이: 무엇보다 '이런 사건도 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인식이 처음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저지른 범죄를 결코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오랫동안 많은 법학자와 국제법 전문가들이 품어온 꿈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냉전 시대 동서 대립 구도 속에서 뉘른베르크의 이상이 잊히고 더 이상 추진되지 못했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를 이정표라 부르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1990년대 초에야 이 아이디어의 르네상스가 일어났고, 그것이 헤이그 법정으로, 그리고 2002년 로마 규정의 발효로 이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처음 이 사업의 출발을 도왔던 이가 마지막에는 서명을 철회했다는 점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뉘른베르크에서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이르는 길은 길고 복잡하며 험난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고령의 나치 범죄자들이 75년 전 범죄에 대해 법정에 서고 있습니다. 이러한 재판이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노르베르트 프라이: 이는 국제형사법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그러나 특히 우리 독일인들은 '살인에는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끝까지 지켜야 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범죄가 여전히 법적으로 추궁 가능한 상태라면, 그 추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핵심은 고령의 피고인에게 어느 정도의 형량을 선고하느냐가 아니라, 살인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독일 사법부가 오랫동안 뼈아프게 겪어온 미처 바로잡지 못한 불의가 이제라도 처리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재판이 진행될 때마다 나치 범죄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되풀이되며 확인되고 새롭게 갱신됩니다.
인터뷰 진행: 알렉산드라 프리드리히(Alexandra Friedri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