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동물도 법정에 섰던 시대, 역사상 최고의 '동물 변호사' 바르톨로메오 샤사네

돼지나 소, 심지어 야생동물이 법정에 세워지는 모습을 상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물론 흉내극이 아니라, 모든 절차적 정당성을 갖춘 실제 재판이요, 변호인까지 배정받는 재판입니다. 놀랍게도 실질적으로 19세기까지 동물을 범죄자로 고발해 재판에 회부하는 일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회에서 인간 관계를 규율하는 법과 질서는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왔습니다. 오늘날이라면 동물을 심판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터무니없다고 여기겠지만, 어떤 시대와 장소에서는 '죄를 지은 자를 반드시 벌한다'는 원칙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설령 상대가 이성 없는 짐승이라 해도 재판을 받고 유죄 판결을 받아야 했으며, 필요하다면 파문과 처형까지 감수해야 했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사람들이 이런 기괴한 재판을 열렬히 환영했다는 점입니다.

동물도 법정에 섰던 시대, 역사상 최고의  동물 변호사  바르톨로메오 샤사네

완전한 절차를 밟았던 동물 재판

동물 재판 역시 모든 절차적 요건을 충족해야 했습니다. 피고 동물은 법원에 출두 통지를 받고 재판장으로 호송되어야 했으며, 변호인이 배정되었습니다. 변호인은 임무를 '성실하고 적절하게' 수행할 것을 맹세해야 했고, 따라서 기각 신청, 공판 연기, 절차상 하자 지적 등 각종 소송 전략과 항변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가운데 눈부시게 활약한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젊은 변호사 바르톨로메오 샤사네(Bartholomeo Chassané)가 바로 그 주인공으로, 오텡(Autun) 교구의 쥐들을 변호한 걸작 변론으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동물도 법정에 섰던 시대, 역사상 최고의  동물 변호사  바르톨로메오 샤사네

오텡 교구의 쥐들을 상대로 한 재판

당시 한 지역은 쥐 떼의 창궐로 큰 피해를 입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잡을 방법이 막막하자, 누군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바로 쥐들을 지방 종교재판소에 고소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쥐들에게도 출두 명령이 내려졌는데, 그 방식이 참 독특했습니다. 지역 교회 문에 소환장을 붙여둔 것입니다.

쥐들은 결국 재판정에 나타나지 않았고, 검사측은 즉각적인 판결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샤사네는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쥐의 수가 너무 많아 소환장 통지에 형식적 하자가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법원은 그의 이의를 받아들였고, 각 본당의 사제들에게 마을과 들녘을 돌며 소환장을 소리 내어 읽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도 쥐들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검사는 곧바로 법정모욕죄를 추가하고 다시 판결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샤사네는 의뢰인들을 저버릴 생각이 없었습니다. 또 한 장의 숨겨둔 패를 꺼냈습니다. 이번에는 쥐들 중 상당수가 나이가 너무 많거나 어려서 법원까지 갈 수 없다는 주장이었고, 나머지 의뢰인들은 출석할 의사가 있더라도 "고발주들의 흉흉한 고양이들"이 두려워 굴 밖으로 나올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그는 의뢰인들이 안전하게 재판정에 출석할 수 있도록 당국이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이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의미했고, 나아가 지역 당국이 보호 책임을 진다면 쥐 하나라도 다칠 경우 거액의 손해배상 책임까지 져야 하는 부담을 안겼습니다.

샤사네는 재판을 돌이킬 수 없는 국면까지 몰아붙였고, 결국 재판은 무기한 연기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요. 그러니까 그는 완벽하게 승리한 셈입니다.

빛난 경력, 그리고 비참한 최후

이 사건은 젊은 변호사에게 화려한 경력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훗날 그는 프로방스 의회의 의장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이후 강한 사회적 반대에 부딪히면서도 한 무리의 이단자들을 변호했는데, 이때 사용한 논거가 무척 절묘했습니다. "오텡의 쥐들조차 공정한 재판을 받았다면, 어찌 이단자에게 재판을 거부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이단을 변호한 대가로 수많은 적을 만들었습니다. 얼마 후 그는 강력한 독이 스민 꽃다발을 선물로 받았고, 그 향기를 맡자마자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