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히틀러의 항공모함 '그라프 체펠린': 단 한 번도 실전에 투입되지 못한 채 59년간 잃어버린 독일 유일의 항공모함

by Janine Kühl, NDR.de

1938년 12월 8일, 항공모함 "그라프 체펠린(Graf Zeppelin)"이 킬(Kiel)에서 화려하게 진수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배는 단 한 번도 실전에 투입되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나치 독일이 유일하게 건조한 항공모함의 흥망성쇠와 59년 만에 밝혀진 최후를 되짚어봅니다.

영국과의 해군 협정, 항공모함 건조 허용

1938년 12월 8일, 나치 정권은 드럼과 트럼펫 소리 속에서 항공모함 "그라프 체펠린"의 진수식을 성황리에 치렀습니다. 독일 해군 지도부는 1935년 11월 킬의 도이체 베르케(Deutsche Werke AG, DKW) 조선소에서 착공된 임시 명칭 "항공모함 A"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군비 계획을 수립할 때 독일은 당시 세계 최강 해군력을 보유한 영국의 전통적 함대 구조를 모델로 삼았습니다.

다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해군은 국제 협약으로 인해 심각한 제약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1935년 여름, 히틀러는 두 척의 항공모함 건조를 공식 허용하는 독영 해군 협정을 영국과 체결하며 돌파구를 마련했습니다. 자매함인 "항공모함 B"는 킬의 프리드리히 크루프 게르마니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예정이었으나, 해당 프로젝트는 곧 중단되었고 그 자리에서 전함 "비스마르크"가 완성되었습니다.

히틀러와 괴링이 지켜본 진수식

"항공모함 A"가 마침내 진수되기까지 3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1938년 12월, 아돌프 히틀러와 헤르만 괴링을 비롯한 정·군계 유력 인사들이 이 광경을 보기 위해 킬을 찾았습니다. 헬라(헬레네) 폰 브란덴슈타인-체펠린(Hella von Brandenstein-Zeppelin)이 아버지의 이름을 따 선박에 "그라프 체펠린"이라는 이름을 부여했으며, 독일 공군 총사령관 자격으로 헤르만 괴링이 세례 축사를 맡았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예인선은 거선을 장비 부두로 견인했습니다.

반복된 공사 중단

그러나 프로젝트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 해군의 우선순위는 잠수함 건조로 옮겨갔고, "그라프 체펠린"의 공사는 히틀러의 요청으로 1942년 3월에야 재개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선체에는 어뢰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돌출부가 추가되었습니다.

동시에 독일 공군은 함재기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융커스 "Ju 87"과 메서슈미트 "Me 155"가 그 대상이었으며, 총 40대의 함재기가 항공모함에 탑재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항공기 개발이 빠르게 진전되고 공군과 해군이 끊임없이 신형 기체를 보고하면서 상부 구조물 설계는 지연을 거듭했습니다. 상부 구조물의 크기와 활주로 길이, 필요한 예비 부품 목록은 계속해서 변경되었습니다.

이듬해 "그라프 체펠린"의 운명은 사실상 결정됩니다. 1943년 1월 26일 히틀러가 모든 대형 전함의 퇴역을 명령했고, 조선소는 같은 해 2월 2일 선박에 대한 모든 작업을 중단했습니다.

떠다니는 예비 부품 창고

길이 263m, 폭 36m의 거대한 이 배는 1943년 4월 슈테틴(Stettin)으로 예인되어 오데르 삼각주에 정박했습니다. 이후 해군은 "그라프 체펠린"을 다른 군함의 예비 부품 공급처로 활용했습니다. 1945년 4월, 소련군이 계속 전진해 오자 독일군은 이 배가 전리품으로 쓰이는 것을 막기 위해 철거반이 벗겨진 항공모함을 얕은 하구에 좌초시켰고, 구동 시스템 또한 파괴했습니다.

소련의 전리품

"그라프 체펠린"의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추측만이 존재합니다. 확실한 사실은 소련이 1947년 3월 이 배를 다시 띄웠다는 점입니다. 이 배는 한 부대의 수용선 역할을 했으며, 이를 위해 항공모함을 포함한 나포 선박들의 건조 문서가 면밀히 검토되었습니다.

59년간 잃어버린 배

그 이후의 행방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그라프 체펠린"의 역사를 폭넓게 연구한 역사학자 울리히 이스라엘(Ulrich Israel)은 이 배가 소련의 실험 표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봅니다. 즉, 소련군은 1947년 8월 14일 실험을 위해 스비네뮌데(Swinemünde) 항에서 거선을 견인해 나갔고, 먼저 갑판 위에서 여러 개의 폭탄을 폭발시켰습니다. 이스라엘에 따르면 "그라프 체펠린"은 어뢰 공격을 받은 뒤에야 침몰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학설은 항공모함이 소련으로 견인되던 중 기뢰에 부딪혔다는 것이며, 어떤 이들은 전리품을 너무 많이 싣는 바람에 폭풍우 속에서 침몰했다고 주장합니다.

폴란드 석유회사가 발견한 난파선

"그라프 체펠린"의 행방은 2006년 여름까지 미궁에 싸여 있었습니다. 2006년 7월, 폴란드 석유회사 페트로발틱(Petrobaltic)의 직원들이 연구 조사 중 난파선을 발견했습니다. 발견 지점은 폴란드 발트해 항구 브와디스와보보(Władysławowo)에서 약 55km 떨어진 곳, 수심 약 80m였습니다. 일각에서는 곧바로 "히틀러의 항공모함이 발견됐다"는 추측이 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폴란드 해군이 수중 음파 탐지기를 활용하고 다이버들을 난파선에 투입해 이를 공식 확인했습니다. 59년 만에 "그라프 체펠린"의 최후가 밝혀진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