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함부르크 소속 일반화물선 MS '브란덴부르크'호는 영국 해협에서 단 몇 분 만에 침몰했습니다. 배는 난파선과 충돌했고, 승무원 남녀 2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글: Kerstin von Stürmer, Jan Wulf
승무원 11명만이 이 난파선에서 살아남았으며, 이는 전후 최악의 해난 사고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그중에는 함부르크 인근 로젠가르텐(Rosengarten) 출신 옌스 헤에쉬(Jens Heesch)도 있습니다. 그는 1971년 1월 12일 배가 영국 해협에서 침몰했을 당시 MS '브란덴부르크'호의 3등 항해사였습니다. '브란덴부르크'호의 마지막 항해는 1971년 1월 11일 안트베르펜에서 시작되어 카리브해를 향할 예정이었습니다. 오후 6시, 온화하고 잔잔한 겨울날, 일반화물선은 출항하여 영국 해협을 향해 항로를 설정했습니다.
배 전체에 울려 퍼진 소름 돋는 소리
'MS 브란덴부르크' 모형을 들고 있는 옌스 헤에쉬는 사고 생존자 11명 중 한 명입니다.
그날 헤에쉬의 당직은 자정에 끝났습니다. 다음 날 아침 7시 15분, 장교 생도가 그를 깨웠고, 그의 당직은 오전 8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분 후, 소름 끼치는 소음이 배 전체를 휩쓸었습니다. 헤에쉬는 곧바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습니다. 그는 코트를 갈아입고 구명조끼를 챙겨 함교로 향했습니다.
긴급 통신을 보낼 시간조차 없었다
'브란덴부르크'호는 전날 침몰한 유조선 '텍사코 카리비안(Texaco Caribbean)'호의 잔해 상당 부분을 들이받았습니다. 선체는 넓은 범위에 걸쳐 찢어져 나갔습니다. 헤에쉬가 함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전원 공급도 끊긴 상태였습니다. 배는 점점 빠르게 앞쪽으로 기울었습니다. 함교의 선원들은 긴급 통신을 보낼 시간조차 없었고, 구명정에 오르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브란덴부르크'호는 불과 3분 만에 가라앉았습니다.
구명조끼 덕분에 헤에쉬는 수면 위에 떠 있을 수 있었습니다. 얼어붙은 바닷물 속에서 긴 2시간 30분을 버틴 끝에, 그는 마침내 영국 어부들에게 구조되었습니다. 어부들은 다른 승무원 10명 역시 익사의 위기에서 구해냈습니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책임 문제
오래된 신문 스크랩에는 '브란덴부르크'호 생존자들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이후 해양 당국의 청문회에서는 하팍로이드(Hapag-Lloyd) 화물선의 승무원들이 난파선의 위치를 알지 못했는지, 그렇다면 왜 그랬는지가 쟁점으로 다뤄졌습니다. 난파선 위치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담긴 무선 메시지가 여럿 존재했지만, 어떤 메시지가 실제로 선박에 도달했고 전달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무선 로그 복구를 목표로 한 잠수 조사도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해양 당국은 '브란덴부르크'호의 침몰이 여러 이례적인 상황이 겹치면서 발생한 것으로 결론지었습니다. 동시에 당국은 충격 시 자동으로 팽창하는 사용하기 쉬운 팽창식 구명 뗏목을 모든 선박에 장착하는 것을 포함한 새로운 안전 대책을 권고했으며, 오늘날 이는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