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2월 23일 일요일 아침, 독일 슈레스비히홀슈타인주 로젠부르크(라우엔부르크 군)의 A24 고속도로 주차장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순찰 점검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슈테판 G.와 슈테판 K., 두 경관은 회색 마쓰다 차량의 비뚤어지고 훼손된 번호판을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운전자 케이 D.는 곧바로 펌프건(펌프액션 산탄총)을 꺼내 들어 경관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습니다.
사건 현장에서 숨진 슈테판 G.
무전으로 상황을 전해들은 동료들이 즉시 출동했고, 무려 15대의 경찰차가 케이 D.를 라우엔부르크까지 추격했습니다. 추격 끝에 시가지 끝자락에서 경찰은 그를 제압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로젠부르크 주차장에서는 경관 슈테판 G.가 이미 숨을 거둔 뒤였습니다. 함께 있던 동료는 중상을 입었지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처음 저지른 총격이 아니었다
수사 과정에서 케이 D.가 독일 극우 세력의 핵심 인물이라는 사실이 금방 드러났습니다. 그는 베를린에서 '독일 국가에 맞서 무기를 들고 싸우고, 사람을 죽이는 것'까지 훈련받은 인물이었습니다. 네오나치인 그가 로젠부르크 주차장에서 검문을 받던 시점은 이미 도피 중이던 때였습니다. 4일 전, 베를린의 좌파 정당 PDS(민주사회당) 소속 당원 클라우스 B.를 향해 총을 쏜 뒤였기 때문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몸이 얼어붙는 느낌"
슈테판 G.의 죽음을 애도하는 횃불 행진이 뤼베크에서 열렸습니다. 수백 명의 동료 경찰과 가족, 친구들이 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슈레스비히홀슈타인 전역에서 온 수많은 경찰들이 침묵 속에서 거리를 행진했습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뤼베크 경찰의 데틀레프 하르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유족의 슬픔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뤼베크 지방법원에 선 피고인 케이 D.에게는 어떠한 반성의 기색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르트는 "긴 시간 관찰한 끝에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유족의 슬픔에는 조금도 마음을 쓰지 않았다. 재판정에서 그는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반국가 체제'에 맞선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의 얼굴에는 오직 증오만이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케이 D.는 범행을 인정하면서도 스스로를 국가에 맞서 정당방위를 행한 순교자로 여겼습니다. 결국 그는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여기에 '특별히 중대한 죄책'이라는 가중 조항까지 붙었습니다.
그는 형기를 모두 마친 뒤 지난해 다시 사회로 돌아왔습니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이미 극우 세력에서 손을 뗀 상태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