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3일, 독일 니더작센주 고어레벤(Gorleben) 인근 벤들란트(Wendland) 숲속의 벌목지에 수천 명의 핵발전 반대 운동가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계획된 핵폐기장 부지인 '심층 시추 공구 1004'를 점거하고, '벤들란트 자유공화국(Freie Republik Wendland)'의 수립을 선포했다. 이는 단순한 시위를 넘어, 대안적 삶을 실험하는 '살아있는 유토피아'이자 독일 반핵 운동사에 길이 남을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자치 공화국은 출범 33일 만인 6월 4일, 사상 최대 규모의 경찰력 투입으로 강제 철거되며 막을 내렸다.
고어레벤 핵폐기장 계획과 저항의 역사
사건의 배경에는 1970년대부터 이어진 치열한 갈등이 있다. 1977년 2월 22일, 니더작센주 총리 에른스트 알브레히트(CDU)는 고어레벤에 핵폐기장과 재처리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반발해 2주 만에 수만 명이 항의 시위에 나섰고, 이후 주민들과 환경운동가들은 도로 점거 시위, 벌목 예정 나무 위 농성, 하노버까지 이어진 '고어레벤 트렉(Gorleben-Treck)' 같은 대규모 트랙터 시위 등을 벌이며 저항의 수위를 높여갔다. 1980년 초에는 분노한 농민들이 시추 예정지에 수만 리터의 액비(液肥)를 뿌리며 물리적 저지에 나서기도 했다.
1980년 5월 3일: '자유공화국'의 탄생
1980년 5월 3일, 수천 명의 활동가들이 숲길을 행진해 시추 공구 1004 부지를 점령했다. 척박한 모래밭이었던 이곳에 그들은 자국 국경 검문소를 세웠다. 통나무로 만든 검문소에는 "정지, 서독 연방공화국. 주의, 발포함"이라는 풍자적 경고판이 걸렸고, 입국비 10마르크를 내면 '벤들란트 여권(Wendenpass)'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날부터 수백 명의 '시민'이 상주하고, 주말이면 수천 명의 지지자와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당시 청년사민당(Juso) 대표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훗날 총리)도 방문해 철거 반대 연설을 하며 힘을 실어주었다.
명상, 사우나, 록 콘서트, 그리고 자체 라디오 방송
자유공화국의 일상은 놀라울 정도로 풍요롭고 조직적이었다. 진흙과 나무로 지은 100여 채의 오두막(정교한 원형 가옥부터 인디언 천막까지), 명상관, 교회, 우정의 집, 사우나, 목욕탕, 온실, 진료소, 미용실, 쓰레기장, 조랑말 승마장, 8미터 높이의 그네 배 등이 들어섰다. 5월 18일부터는 직접 세운 송신탑에서 '자유 벤들란트 라디오(Radio Freies Wendland)'가 방송을 시작했다. 저녁이면 강연, 토론, 록 콘서트, 인형극이 열렸고, 주민들은 조림, 건축, 식량 조달 등 다양한 작업반으로 나뉘어 자치적으로 생활했다. 인근 마을 주민들도 목재와 식량을 지원하며 적극 연대했다.
1980년 6월 4일: 불도저와 탱크, '반역' 진압 작전
헬무트 슈미트(SPD) 총리가 이끄는 연방정부와 니더작센주 정부는 이 자치 공화국을 '국가에 대한 반역(고위 반역)'으로 규정했다. 주 내무장관 에크베르트 뫼클링호프(CDU)는 NDR 인터뷰에서 점거 행위가 건축법, 전염병법, 주민등록법 등 수많은 현행법을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1980년 6월 4일 새벽 6시, 경찰과 연방국경수비대 약 7,000명(전후 최대 규모)이 불도저, 탱크, 살수차, 곤봉을 앞세워 부지를 포위했다. 장갑부대원들은 얼굴을 검게 칠했고, 헬기들이 상공을 맴돌았다. 오전 7시, 확성기로 퇴거 명령이 내려졌다.
"우리가 행운아임을 기억하라!"
마을 광장에 모인 2,000명의 주민들은 "생에 대한 갈망이 우리의 저항이다" 같은 평화로운 노래를 부르며 맞섰다. 아코디언 반주에 맞춰 나치 저항투사이자 녹색당 공동 창당자인 하인츠 브란트는 동료들에게 외쳤다. "이제 벌어질 모든 일 앞에서 기억하라: 우리가 행운아다! 우리가 여기다 짓고 심었다. 불행한 자들은 지금 흰 헬멧을 쓰고 몽둥이로 우리를 공격하려는 저들이다."
곤봉으로 끝난 유토피아, 그러나 정신은 남았다
경찰의 반복된 퇴거 명령에도 시위대는 꿈쩍하지 않았다. 오전 11시, 진압대가 광장의 사람들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앉아서 저항하는 비폭력 시위자들에게 곤봉이 휘둘러졌다. 불도저가 오두막들을 밀어붙이기 직전, 마지막 오두막 벽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탑과 문을 부술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든 우리의 힘은 부술 수 없다." 철거는 오후 8시경 끝났다. 텅 빈 광장은 철조망으로 둘러쳐졌고, '벤들란트 자유공화국'은 지도 위에서 지워졌다. 하지만 그 정신은 이후 수십 년간 독일 반핵 운동의 원동력으로, 고어레벤 저항의 상징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