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들이 독일을 안전한 존재로 여겼다는 통념은 사실과 다릅니다. 오히려 프랑스는 독일, 그리고 그 핵심이었던 프로이센에 대해 깊은 불안감과 적개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굴욕적인 패배의 기억과 절박한 군사적 열세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1870년의 굴욕, 알자스-로렌의 상실
프랑스는 프로이센과의 과거 전쟁에서 연이어 굴욕적인 패배를 겪었습니다. 특히 1870~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보불전쟁)에서 패배한 뒤, 부유한 산업 지역인 알자스-로렌 지방을 독일에 할양해야 했습니다. 이 상실은 프랑스 국민에게 깊은 상흔으로 남았고, '영토 회복'이라는 목표는 이후 프랑스 외교·군사 정책의 중심축이 되었습니다.
독일의 급속한 군비 확장
설상가상으로 독일은 빠른 속도로 군비를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구와 산업력 모두에서 우위를 점한 독일은 유럽 최강의 육군을 보유하고 있었고, 프랑스군 지도부는 자신들이 병력과 화력 면에서 크게 열세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은 1917년에서 1920년 사이에 온다"
프랑스 군 수뇌부는 독일과의 전쟁이 언젠가 반드시 일어날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당시 프랑스 참모본부는 인구 증가 추세와 징병 가능 병력 규모를 고려해, 전쟁 발발 시점을 대략 1917년에서 1920년 사이로 예측했습니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에 시작되어 예상보다 몇 년 앞당겨졌지만, 그 방향성 자체는 프랑스가 내다본 대로였습니다.
국경을 따라 세워진 강력한 방어선
이러한 위기 의식 속에서 프랑스는 독일과 맞닿은 동부 국경을 따라 대규모 요새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벨포트에서 에피널, 툴, 베르됭에 이르는 요새선이 차례로 구축되었으며, 이러한 노력은 훗날 마지노 선(Maginot Line)으로 이어지는 방어 전략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독일 역시 자국 국경을 따라 비슷한 성격의 방어 시설을 건설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프랑스는 독일을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이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굴욕적인 과거의 패배, 열세에 놓인 군사 균형, 피할 수 없다고 여겨진 전쟁까지 — 프랑스의 국방 정책은 오직 독일의 침공에 대비하는 데 집중되어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