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호프만
뤼베크-트라베뮌데 출신 만화가 '브뢰젤(Brösel)', 본명 뢰트거 펠트만(Rötger Feldmann)은 무엇보다 '베르너(Werner)' 시리즈로 독일 전역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의 작품은 종이 위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역사에 한 획을 남겼습니다. 최초의 '베르너' 경주는 1988년 하르텐홀름에서 브뢰젤의 호렉스(Horex) 오토바이와 친구 홀기의 포르쉐 911 간의 대결로 시작되었습니다.
고요한 마을이 순례지로 변하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조용한 마을 하르텐홀름이 오토바이 팬들의 성지가 된 것은 1988년 9월 4일이었습니다. 당시 제게베르크(Segeberg) 지구 비행장에서 열린 '고일레 파디(Goile Paadie)'의 결산 내역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음악과 스턴트, 넘쳐흐른 '뵐크슈토프(Bölkstoff, 맥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더럽혀진 앞마당과 약 1,500㎥에 달하는 쓰레기까지 더해졌습니다. 무려 20만 명의 방문객이 만화가 브뢰젤의 고성능 호렉스 바이크와 절친 홀거 '홀기' 헨체(Holger Henze)의 빨간 포르쉐 911 간의 전설적인 레이스를 지켜보며 열광적인 파티를 만끽했습니다.
'베르너'가 남긴 흔적
이 축제는 비행장과 인접한 하젠무어(Hasenmoor) 지자체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으며, 그 추억은 오늘날까지도 지자체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예전 같은 열정은 사그라든 상태입니다. 웹사이트에는 "우리 마을에 군중이 몰려드는 일대 소동이었다"는 문장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하르텐홀름, 인파로 뒤덮이다
경주 소식은 상상을 초월한 인파를 불러 모았고, 주최 측은 완전히 압도당했습니다. 수주에 걸친 준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규모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55마르크에 팔린 티켓만 거의 10만 장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파티를 즐긴 팬들이 다시 몰려올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결국 인파는 하르텐홀름 주변은 물론 A7 고속도로와 연방도로 B206에서까지 교통 대란을 일으켰습니다. "제게베르크 지역 도로에서 저런 혼란은 처음이었다"고 당시 현장을 취재한 노르더슈테터 차이퉁(Norderstedter Zeitung)의 프랑크 크니터마이어(Frank Knittermeier) 편집자는 회상합니다.
혼돈 속의 해결책
방문객의 물결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주최 측은 항복하고 게이트를 활짝 열었으며, 티켓 소지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를 경마장으로 입장시켰습니다. 자리가 보이는 곳마다 텐트가 쳐졌고, 비행장과 급히 임대한 주변 부지는 거대한 캠핑장처럼 변했습니다. 크니터마이어에 따르면 초기에는 팬들이 비행장 주변에 흩어져 있었지만, BAP, 로저 채프먼(Roger Chapman) 등 정상급 뮤지션들이 무대에 오르면서 페스티벌 장은 순식간에 가득 찼습니다.
만화에서 레이싱까지: '베르너'의 탄생 배경
펠트만은 14권의 만화책과 5편의 '베르너' 영화를 통해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만화가 반열에 올랐습니다. 이번 파티의 직접적인 계기는 1985년 출간된 '베르너' 시리즈 4권이었습니다. 작중 주인공은 개조한 호렉스 오토바이를 타고 홀기의 포르쉐 911과의 경주에서 승리하겠다고 내기를 걸었죠. 만화 속 이야기를 현실로 만들기로 결심한 것은 바로 만화가 본인과 실제 친구인 '홀기'였습니다.
1988년 9월 첫째 주말, 드디어 그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브뢰젤은 자작 개조 호렉스, 이른바 '레드 포르쉐 킬러(Red Porsche Killer)'를 창고에서 꺼냈습니다. 홀기는 자신의 빨간 포르쉐 911을 몰고 600m 트랙에 나섰습니다. 승부는 순식간에 갈렸습니다. 출발 직후 '레드 포르쉐 킬러'가 먼저 앞서 나갔지만, 결국 911이 압도적인 격차로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브뢰젤은 단순한 변속 문제였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는 훗날 뉴스 잡지 '데어 슈피겔(Der Spiegel)'에 "변속을 잘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쓰레기 산, 눈앞에 펼쳐진 참상
축제가 끝나자 많은 주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혼란은 그 후였습니다. '데어 슈피겔'에 따르면 팬들은 단 3일 동안 소시지 60만 개와 '뵐크슈토프'(맥주) 45만 리터를 소비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쓰레기를 그대로 두고 떠났습니다. 방문객들이 남긴 유산은 "플라스틱 컵, 자동차 타이어, 깡통, 파란 쓰레기 봉투로 뒤덮인 빽빽한 카펫"으로 묘사됩니다. 청소 작업에는 무려 2주가 걸렸습니다. 당시 하르텐홀름 시장 쿠르트 뵈게(Kurt Böge, CDU)는 노르더슈테터 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뼈아픈 말을 남겼습니다. "주최자들은 철수하고 우리 마을만 엉망으로 남겨졌다."
이런 말이 나온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미 설치된 600개의 이동식 화장실은 쓰레기 수거 서비스조차 제때 받지 못한 채 순식간에 넘쳐났고, 결국 사람들은 마음 내키는 곳 어디서든 볼일을 해결했습니다.
문제는 쓰레기 산만이 아니었습니다. 작은 마을 곳곳에 황폐화의 흔적이 남았습니다. 불에 탄 자동차와 뽑혀 나간 나무 울타리들이 그 증거였습니다. 밤에는 추위를 견디지 못한 축제 참석자들이 울타리를 땔감으로 태워버린 것이었습니다. 결국 브뢰젤과 조직팀은 이 모든 대가를 값비싸게 치러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