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루시타니아호 침몰 이후 미국은 왜 약 2년 동안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미뤘을까?

독일이 루시타니아호(RMS Lusitania)를 침몰시킨 직후 미국이 곧바로 전쟁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1915년 5월 7일 독일 잠수함 U-20의 어뢰 공격으로 루시타니아호가 침몰한 뒤, 미국은 약 2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1917년 4월 6일에야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그토록 오랜 시간 개입을 미루었을까요?

루시타니아호 침몰 사건

루시타니아호는 영국의 대서양 횡단 여객선으로,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선포한 잠수함 봉쇄 구역을 통과하던 중 어뢰에 맞고 아일랜드 해안 근처에서 침몰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승객과 승무원 약 1,200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중에는 미국 시민 100여 명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미국 여론은 크게 분노했지만, 정부가 즉각적으로 전쟁에 나서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이 개입을 미룬 주요 이유

강한 중립주의 여론

당시 미국 내 다수의 국민은 유럽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특히 아일랜드계와 독일계 이민자들은 영국과 싸우는 독일에 적대감을 느끼지 않았고, '전쟁 반대' 여론은 강력한 정치적 무기였습니다.

윌슨 대통령의 평화 외교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그가 우리를 전쟁에서 지켜냈다(He kept us out of war)"는 슬로건으로 1916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할 만큼 중립 노선을 견지했습니다. 그는 군사적 개입보다는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며 교전국 간 평화 협상을 추진했습니다.

독일의 타협과 서식스 서약

1916년 프랑스 여객선 서식스호가 독일 잠수함의 공격을 받자, 미국의 강경 항의에 독일은 민간 선박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중단하겠다는 '서식스 서약(Sussex Pledge)'을 발표합니다. 이로써 미국과 독일 간 긴장은 일시적으로 완화되었고, 참전 명분도 흐려졌습니다.

전환점: 무제한 잠수함 작전과 치머만 전보

그러나 1917년 초 상황이 급변합니다. 독일은 전세 역전을 위해 다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는 미국 선박까지 공격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영국 정보 당국이 독일이 멕시코에 보내려던 비밀 외교 문서인 치머만 전보(Zimmermann Telegram)를 입수해 공개했습니다. 이 전보에는 멕시코가 독일 편에 서서参战하면 텍사스·애리조나·뉴멕시코 등 옛 영토를 되찾도록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미국 여론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결국 1917년 4월, 선전포고

잇따른 도발과 국내 여론의 변화 속에서 윌슨 대통령은 의회에 대독 선전포고를 요청했고, 1917년 4월 6일 미국은 공식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됩니다. 결국 루시타니아호 침몰은 미국 여론에 깊은 상처를 남긴 결정적 계기였지만, 실제 참전은 약 2년 후 독일의 추가 도발이 쌓인 끝에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