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1월 3일, 북해에서 같은 이름의 허리케인이 맹위를 떨치던 그날 밤, 동독 화물선 '카펠라(Capella)'의 승무원 11명 전원이 목숨을 잃습니다. 동시에 해일은 엘베 하류(Lower Elbe) 지역을 범람시켰고, 함부르크의 수위는 관측 사상 최고치를 기록합니다.
글: 이레네 알텐뮐러(Irene Altenmüller)
1976년 1월 첫 번째 토요일 이른 아침, 독일 만(German Bight)에 극심한 폭풍이 몰아쳤습니다. 허리케인 '카펠라'는 시속 150km의 바람으로 북해의 물을 해안으로 밀어 올렸고, 만조와 겹치면서 독일 북해 연안에서는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높은 폭풍 해일이 기록되었습니다. 파도의 높이는 최대 17미터에 달했습니다. 바람은 엄청난 양의 물을 엘베 강어귀로 밀어 넣었습니다.
"물이 굉장한 속도로 북해에서 엘베 강으로 밀려 들어왔습니다. 수면은 제방 꼭대기에 거의 닿을 정도였습니다. 폭풍은 어둠 속에서 맹렬히 몰아쳤고, 모든 것이 마비되었습니다." 당시 열 살이었던 디르크 헴펠(Dirk Hempel)은 쿡스하펜 쿠겔바케(Kugelbake)에서 목격한 그날의 홍수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함부르크, 관측 사상 최고 수위 6.45미터 기록
해일은 3시간도 채 되지 않아 쿡스하펜에서 함부르크까지 도달했고, 그 과정에서 다시 1미터 이상 더 상승했습니다. 물이 함부르크에 닿았을 때 장크트 파울리(St. Pauli)의 수위는 6.45미터였습니다. 이는 오늘날까지 측정된 함부르크의 최고 수위 기록입니다. 참고로 3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1962년 폭풍 해일 당시의 수위는 5.70미터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함부르크가 대참사를 피했습니다. 1962년 이후 새롭게 정비된 제방이 역할을 했고,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물질적 피해는 막대했습니다. 제방 바깥쪽 보호 구역이 없던 항만 지역에서는 물품 재고와 고가의 기계가 파괴되고 기업들이 침수되었습니다. 한자동맹 도시 함부르크의 피해액은 최대 10억 독일마르크로 추산됩니다.
제방 붕괴로 지역 전체가 물에 잠기다
물의 힘은 엘베 하류의 노후 제방을 여러 곳에서 무너뜨렸습니다. 슈타데(Stade) 인근 드록터젠(Drochtersen)에서는 100년이 넘은 제방 꼭대기가 찢어지면서 물이 케딩거란트(Kehdinger Land)까지 밀려 들어갔고, 저지대와 습지가 많은 이 지역은 몇 주가 지나도록 물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엘베 강 북쪽 베델(Wedel) 인근 하젤도르퍼 마르쉬(Haseldorfer Marsch)에서는 9곳에서 제방이 갈라지며 물이 범람해 농장 150곳이 파괴되었습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소·양·돼지·닭 수백 마리와 사슴·토끼·꿩 등 수많은 야생동물이 익사했습니다.
보트와 헬리콥터를 동원한 대피 작전
이 두 지역만으로 약 10만 헥타르가 침수되었는데, 이는 당시 서베를린 면적에 맞먹는 규모입니다. 해안 지역의 피해도 심각했습니다. 멜도르프(Meldorf) 인근 크리스티안스코크(Christianskoog)에서는 제방이 30미터에 걸쳐 무너졌고, 잘란트(Sylt) 섬에서는 물이 섬을 란툼(Rantum)과 효르눔(Hörnum) 사이로 가를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제기되었습니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의 피해는 약 1억 5천만 독일마르크, 니더작센주는 약 5천만 독일마르크에 달했습니다.
허리케인과 해일의 위력을 고려하면 독일 북부의 피해는 훨씬 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62년 참사 이후 약 14년간 이루어진 대비가 빛을 발했습니다. 재난 대응팀이 즉시 투입되었고, 물에 갇힌 주민들은 헬리콥터와 돌격정으로 구조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6,000명 이상의 구조 인력이 투입되었습니다.
동독 화물선 '카펠라' 침몰 — 승무원 11명 전원 사망
로스토크(Rostock) 소속 동독 연안 화물선 '카펠라'의 승무원 11명에게는 구조가 너무 늦었습니다. 배는 동프리슬란트 제도(East Frisian Islands) 근해에서 폭풍우에 선체 파손을 입었습니다. 긴급 수리 후에도 선박 운영 측은 보르쿰(Borkum) 섬까지 항해할 수 있다고 판단해 처음에는 승무원 구조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카펠라'는 침몰했고, 해상 구조함도 헬리콥터도 아직 물 위에 떠 있던 선원들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승무원 11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배의 비극적인 침몰은 이 허리케인이 '카펠라'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유래가 되었습니다. 이 재난으로 독일에서는 총 16명, 유럽 북서부 전체에서는 82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