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Irene Altenmüller, NDR.de
1976년 1월 9일 저녁, 함부르크 항구의 조선소 블롬+포스(Blohm + Voss)에서는 2교대 근무자들이 다가오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길이 209미터에 달하는 컨테이너선 '앤더스 머스크(Anders Maersk)'호의 신조 공사 한복판이었습니다. 이 배는 9척으로 구성된 자매선 시리즈 중 하나로, 그중 6척이 블롬+포스에서 건조되고 있었습니다.
시험 운항은 불과 8일 뒤로 예정되어 있었고, 엔진실에 설치된 높이 6미터의 강재 탱크는 마지막 압력 시험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후 6시 13분, 재앙이 닥쳤습니다. 당시 배 위에는 약 50명의 노동자와 엔지니어, 장인들이 근무 중이었습니다.
거대한 폭발과 300도의 뜨거운 증기
선박 기관실의 증기 보일러가 폭발한 것입니다. 파열된 보일러에서는 약 50bar(승용차 타이어 공기압의 약 25배)의 압력으로 300도가 넘는 과열 증기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사고로 12명이 현장에서 즉사했고, 29명은 심한 화상을 입거나 날아든 잔해에 맞았으며, 폭발 충격에 벽에 내던져졌습니다. 사고 이후 선박의 기관실은 완전히 초토화되고 말았습니다.
생존자가 목격한 지옥 같은 순간
생존자 중 한 명인 한스 디터 마르크그라프(Hans Dieter Marggraf)는 사고 당시 최하층 기관실 복도의 철제 바닥에 접착제를 바르고 있었습니다. 사고 이틀 후 그는 '함부르거 모르겐포스트(Hamburger Morgenpost)'에 폭발의 순간을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마치 발사체처럼 거대한 주먹이 갈라져 나오더군요. 그러다 뜨거운 공기가 밀려와 숨조차 쉴 수 없었습니다."
심한 타박상을 입은 그는 어떻게든 배에서 탈출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의 일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마르크그라프는 "주변은 깜깜했고, 동료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들려왔다"고 회상했습니다.
4분 만에 출동한 구조대, 그러나 27명의 희생자
엘베섬 슈타인워더(Steinwerder)의 사고 현장에는 폭발 발생 불과 4분 만에 소방대원과 응급의료진이 도착했습니다. 구급차들은 부상자들을 알토나(Altona)와 장크트 게오르크(St. Georg)의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고, 가장 빠른 경로인 구(舊) 엘베 터널을 통해 인근 항만 병원으로도 환자를 옮겼습니다. 당시 1년 반 전에 폐쇄됐던 병원의 한 진료 부서는 폭발 피해자 치료를 위해 특별히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중상을 입은 많은 이들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었습니다. 노동자 3명이 입원 직후 사망했고, 이후 12명이 중상으로 숨을 거두면서 이 사고의 희생자는 총 27명에 이르렀습니다. 함부르크 시는 조기 게양으로 희생자들을 애도했습니다.
끝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원인
참사가 발생한 지 불과 며칠 만에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대체 무엇이 이 재앙을 불러온 것일까? 독일 금속노조(IG Metall)가 지적했듯 안전 규정이 너무 느슨했던 것일까? 하지만 폭발로 담당 안전 기술자와 관련 전문가들이 모두 목숨을 잃으면서 원인 규명은 큰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뜨거운 보일러에 디젤유가 유입된 것이 발화점으로 추정합니다. 이후 가스와 공기의 혼합물이 보일러 튜브 안에서 점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원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1978년 2월 말, 함부르크 검찰청은 과실치사 혐의로 조선소 경영진을 상대로 진행하던 예비 수사를 종결했습니다. 조선소의 잘못을 입증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6개월 늦게 인도된 배의 나머지 항해
'앤더스 머스크'호는 사고 이후 신속하게 복구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새 엔진을 장착하는 등 공사가 6개월 지연된 끝에, 블롬+포스는 1976년 8월 컨테이너선을 소유주인 덴마크 해운회사 마에르스크 라인(Maersk Line)에 인도했습니다. 이 배는 이후 여러 이름으로 개명되며 2009년까지 바다를 누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