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사보이아의 아마데우스 1세: 스페인 왕관을 쓴 이탈리아 공작의 짧은 통치

초기 생애와 군 복무

사보이아의 아마데우스 1세(아오스타 공작)는 스페인의 국왕으로 즉위한 인물로, 1845년 5월 30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탈리아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와 그의 아내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아델라이데 사이에서 태어난 차남이었다.
아마데우스는 아버지의 궁정에서 로시 장군을 스승으로 삼아 교육받았으며, 중령 계급으로 이탈리아 육군에 입대했다. 1866년에는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노르망디 척탄병 부대를 지휘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기병 여단의 지휘권을 맡았다. 1867년에는 마리아 비토리아 델 포초 데 라 치스테르나 공주와 결혼했으며, 1869년에는 해군에 부제독으로 입대했다.

스페인 국왕으로 즉위하다

1869년 6월 스페인 헌법이 승인되면서 스페인의 통치 형태가 세습 입헌군주제로 확정되었다. 여러 후보들이 왕관을 사양한 끝에 아오스타 공작에게 스페인 왕관이 제안되었고, 그가 이를 받아들이자 1870년 11월 16일 코르테스는 찬성 191표, 반대 120표로 그를 스페인 국왕으로 선포했다.
아마데오 1세는 1870년 12월 30일 카르타헤나에 상륙했고, 1871년 1월 2일 마드리드에 입성했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12월 27일 의회를 나서던 중 마드리드 투르코 거리에서 습격을 받아 12월 30일 숨진 프림 장군의 유해를 찾아 문조했다.

아마데오 1세는 헌법을 선서하고 세라노 장군이 이끄는 정부를 구성했다. 1871년 3월 말에는 왕비 마리아 비토리아가 자녀들과 함께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이어진 4월 3일 코르테스가 개회되었고, 국왕은 개회 연설에서 국가의 법률과 국민 주권에 따라 통치할 것을 약속했다.

혼란에 빠진 통치기

1872년 4월 6일, 산타크루스 신부의 지휘 아래 북부 지역에서 제3차 카를리스트 전쟁이 일어났다. 5월 2일에는 카를리스트 진영의 왕위 요구자 카를로스 마리아 데 로스 돌로레스(카를리스트들에게는 '카를로스 7세')가 스페인에 도착했지만, 이틀 뒤 패배하며 700명의 포로를 남기고 스페인을 떠나야 했다. 이로써 북부의 전쟁은 일단락되었으나, 카탈루니아에서는 전투가 계속 이어졌다.
1872년 7월 18일에는 국왕 부부가 마드리드 아레날 거리에서 암살 시도를 겪었지만 다행히 무사했다. 그러나 정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었고, 1873년에 들어서자 사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퇴위와 말년

결국 아마데오 1세는 퇴위를 결심했고, 1873년 2월 11일 의회 양원이 국민의회로 합동 회의를 열던 날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서도 스페인 왕관을 내려놓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 자리에서 양원은 국왕의 퇴위를 수용하고 곧바로 스페인 제1공화국을 선포했다. 다음 날 돈 아마데오는 가족과 함께 리스본으로 떠났고, 이후 이탈리아로 돌아갔다.
귀국 직후 그는 중장 계급과 아오스타 공작 작위를 되찾았으며, 40만 리라의 연금을 받았다. 재위 기간 동안 왕비 마리아 비토리아는 마드리드에서 세탁부 종사자들의 자녀를 위한 고아원 설립에 서명하기도 했다. 마리아 비토리아는 1876년 세상을 떠났으며, 두 사람 사이에는 마누엘 필리베르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루이지 아메데오 세 아들이 있었다.

1888년 아마데오는 누이 클로틸데와 제롬 나폴레옹 왕자 사이의 딸인 레티치아 공주와 재혼해 아들 움베르토를 얻었다. 이탈리아로 돌아온 뒤 아오스타 공작은 더 이상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1890년 1월 18일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