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콤모두스 황제가 살해된 뒤, 로마의 실권은 근위대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콤모두스를 죽였다는 소문이 돌던 근위대장 라이투스는 뒤이어 즉위한 푸블리우스 헬비우스 페르티낙스마저 살해했습니다. 왕좌를 등에 업은 근위대는 과감하게 다음 황제 자리를 경매에 부쳤고, 디디우스 율리아누스가 이를 낙찰받으며 새 황제가 되었습니다.
대대로 원로원 의원을 배출한 명문 가문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부자'입니다. 그를 이해하는 데는 대대손송 원로원 의원을 배출한 가문의 후손이라는 점만 기억하면 충분합니다.
그는 오늘날 밀라노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태어나 15세 때 로마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유학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외가였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인연 덕분에 그는 제국의 핵심 요직을 순조롭게 밟아 올라갔습니다. 감사관(콰이스토르)과 조영관(아이딜리스)을 거쳐 법무관(프라이토르)이 되었고, 이후 프로프라이토르 신분으로 여러 속주를 다스린 경험까지 쌓아 집정관에 선임되었습니다. 전형적인 로마식 '명예로운 경력(쿠르수스 호노룸)'이었습니다.
60세에 황제가 된 율리아누스가 평생 쌓은 경력 위에 더 큰 명예를 얻고 싶었는지, 아니면 진심으로 로마 제국의 재건을 꿈꿨는지는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즉위와 동시에 시작된 반율리아누스 운동
율리아누스가 즉위하자마자 각 속주 총독부에서는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친아들 콤모두스에게 제위를 물려준 것이 바로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서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은 율리아누스와 근위대장 라이투스에게 치명적인 계산 착오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상판노니아 총독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움직임은 특히 빨랐습니다. 그는 즉각 군단을 이끌고 로마로 진군하기 시작했습니다.
율리아누스는 세베루스에게 공동 통치를 제안했지만 완전히 무시당했습니다. 원로원은 세베루스를 인정하고 율리아누스를 황제 자리에서 파면했으며, 근위대마저 율리아누스를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율리아누스는 근위대의 손에 목숨을 잃으며 세상과 작별했습니다. 재위 기간은 단 66일. 원로원은 그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형벌까지 내렸습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이렇다고 전해집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가? …내가 누구를 죽였다는 말인가?"
과연 율리아누스는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폭정을 저지른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황제의 자리를 돈으로 사는, 그야말로 최악의 행위에 동참했습니다. 이는 로마 시민들의 긍지를 짓밟았고, 황제권의 권위를 스스로 땅에 떨어뜨린 것이었습니다.
황제는 '프린켑스', 팔고 살 수 없는 자리
로마 황제는 어디까지나 시민들을 대표하는 '프린켑스(제1시민)'였습니다. 결코 금화와 거래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던 사람은, 어쩌면 율리아누스 자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제위의 매매. 로마 제국의 부패는 바로 여기서 극에 달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율리아누스를 죽인 근위대의 뒷이야기입니다. 근위대원들은 이후 세베루스에게 아부하며 절대 복종을 맹세했지만, 세베루스는 이를 일축하고 '다시는 로마에 접근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목숨만은 살려주었습니다.
눈앞의 욕망에 눈이 멀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그 결과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율리아누스는 한낱 우스갯거리 같은 실패담으로 남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최후는 돈으로 권력을 사려던 자와 권력을 팔아넘긴 자 모두에게 남겨진 뼈아픈 대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