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티야의 알폰소 8세, 누구인가?
알폰소 8세(Alfonso VIII)는 '고귀한 자(el Noble)'이자 '나바스의 왕'이라 불린 카스티야 왕국의 군주입니다. 그는 1155년 산초 3세(1158년 즉위)의 아들로 태어나 구티에레스 데 카스트로(Gutiérrez de Castro)의 보호 아래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라라(Lara) 가문이 후견인 지위를 강탈하면서 양측 간에 내전이 벌어졌고, 나바라 왕 산초 4세(Sancho IV)는 이 혼란을 틈타 라 리오하(La Rioja) 지역의 여러 거점을 손에 넣었습니다.
친정 선언과 영토 회복
알폰소 8세는 1170년 부르고스 궁정에서 법적 성년으로 선언되었습니다. 이후 아라곤의 알폰소 2세와 동맹을 맺었고(1174년에는 알폰소 8세의 숙모인 산차와 결혼), 그의 도움으로 1175년 나바라에게 빼앗긴 거점들을 되찾았습니다. 1177년에는 알모하드 왕조로부터 쿠엥카(Cuenca) 시를 정복했으며, 이를 계기로 아라곤의 도움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카스티야가 아라곤에 대해 주장해 온 영지권을 무효화했습니다.
알모하드 왕조와의 전쟁, 그리고 알라르코스의 패배
알폰소 8세는 알모하드 왕조와의 싸움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1182년 시에테필라(Sietefila), 1184년 알라르콘(Alarcón), 1186년 인피에스타(Infíesta), 1187년 레이나(Reyna), 1189년 마가수엘라(Magazuela), 바뇨스(Baños), 칼라스파라(Calasparra)를 차례로 점령했고, 1194년에는 알헤시라스(Algeciras)까지 진격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마그레브에 머물던 알모하드 에미르 알만수르(Al-Mansur)에게 도전장을 보냈고, 에미르는 같은 편지 뒷면에 직접 찾아가 응답하겠다고 격렬하게 답신했습니다. 실제로 알모하드군은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알안달루스에 등장해 1195년 7월 19일 알라르코스 전투에서 알폰소 8세를 대파했습니다.
레온·나바라와의 분쟁과 바스크 지방 편입
패배 이후 알폰소 8세는 제때 원군을 보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레온과 나바라에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아라곤의 페드로 2세가 카스티야를 지원했고, 분쟁은 1198년 알폰소 8세의 딸 베렝겔라(Berenguela)와 레온 왕 알폰소 9세의 결혼으로 일단락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나바라의 산초 7세와의 전쟁을 벌였는데, 산초 7세는 알만수르에게 도움을 청하러 마그레브로 향했습니다. 한편 1200년에는 세 개 장원이던 바스크 지방이 나바라에서 분리되어 카스티야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기푸스코아(Gipuzkoa)는 이때 알폰소 8세를 왕으로 선포했으며, 알라바(Álava)와 비즈카야(Vizcaya)는 각각 1332년과 1379년까지 자체 영주권을 유지한 뒤 카스티야에 귀속되었습니다.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1212)
1211년 알폰소 8세는 다시 알모하드 왕조에 맞서 싸움에 나섰습니다. 그는 아들 페르난도(Fernando)와 함께 하티바(Játiva)에 도착했고, 페르난도는 트루히요(Trujillo)와 몬탄체스(Montánchez)를 점령한 뒤 같은 해 원정에서 돌아오자마자 마드리드에서 요절했습니다. 이윽고 알모하드의 새 에미르 알나시르(Al-Nasir, 1199~1213)가 대군을 이끌고 마그레브에서 건너왔습니다. 알폰소 8세는 교황 인노첸시오 3세(Innocent III, 1198~1216)에게 무슬림에 대한 십자군 설교를 요청했고, 교황은 십자군을 선포하는 한편 이베리아 반도에 온 모든 이들에게 전대사(全免大赦)를 부여했습니다. 그리하여 1212년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Battle of Las Navas de Tolosa)가 벌어졌습니다.
대승 이후의 통치와 최후
무슬림에 대한 이 위대한 승리를 기념해 가톨릭 진영은 성십자가 현양 축일을 제정했습니다. 카스티야 왕은 빌체스(Vilches), 바뇨스, 톨로사(Tolosa), 페라트(Ferrat)를 재정착시키고, 1212년에는 바에사(Baeza), 1213년에는 두에냐스(Dueñas)와 알카라스(Alcaraz)를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알모하드군이 반격하여 바에사를 탈환했고, 알폰소 8세는 기근으로 이를 회복할 수 없어 알나시르와 휴전을 맺었습니다. 그는 1214년 10월 5일 아빌라의 구티에레스 무뇨스(Gutiérrez Muñoz)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화적 유산과 가족
전쟁 활동 외에도 알폰소 8세는 팔렌시아 대학교와 부르고스의 라스 우엘가스 수도원(Las Huelgas de Burgos)을 설립했으며, 그의 유해는 이 수도원에 안치되었습니다. 아내 레오노르는 그가 죽은 직후 뒤따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사람은 1170년에 결혼했으며, 레오노르는 잉글랜드 왕 헨리 2세와 아키텐의 엘레노어의 딸이었습니다. 슬하에 둔 자녀는 다음과 같습니다.
- 베렝겔라(Berenguela): 훗날 페르난도 3세의 어머니
- 페르난도(Fernando): 1211년 사망
- 엔리케(Enrique): 왕위 계승자
- 우라카(Urraca): 포르투갈 왕비
- 블랑카(Blanca): 프랑스 왕비, 루이 9세의 어머니
- 레오노르(Leonor): 아라곤 왕 하이메 1세의 첫 번째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