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데라만 3세(Abd al-Rahman III)는 코르도바 최초의 칼리프로, 912년부터 961년까지 알안달루스를 통치한 군주입니다. 그는 891년 코르도바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모하메드(압달라 벤 모하메드의 아들), 어머니는 카톨릭 신자의 딸인 마리아였습니다.
912년, 할아버지는 자신의 자녀들보다 손자 압데라만을 더 총애하여 왕좌의 후계자로 임명했고, 이를 통해 그는 권력을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즉위 직후 그는 이전 통치기부터 남아 있던 수많은 반군과 싸워 이들을 제거해야 했습니다. 톨레도에서는 하프순(Hafsun)의 아들들을 격파했고, 알하마에서는 아조모르(Azomor)를 복속시켰으며, 카소를라와 오베이달라(Obeidallah), 사라고사 역시 그에게 항복했습니다.
칼리프 즉위와 북부 기독교 왕국과의 전쟁
929년 1월 16일, 압데라만 3세는 토후국 체제를 종식시키고 스스로 칼리프임을 선포했습니다. 이로써 코르도바 칼리프국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932년에는 모든 정부 기능을 완전히 물려받아 장악했습니다.
한편 압데라만 3세는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카톨릭 왕국들과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습니다. 칼리프의 군대는 발데준케라(Val de Junquera)에서 적군을 격파했으나, 이후 산초(Sancho)와 그의 아들 가르시아 산체스 1세(García Sánchez I, 재위 925~970)에게 패배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오르도뇨 2세(Ordoño II)는 알안달루스를 거쳐 코르도바 인근까지 진입해 여러 마을을 파괴하고 상당한 전리품을 챙겨 레온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또한 아스투리아스와 레온의 왕 라미로 2세(Ramiro II, 재위 930~950), 카스티야 백작 페르난 곤살레스(Fernán González, 재위 929~970)와도 교전하여 이들을 물리쳤습니다. 이후 칼리프는 사모라를 포위했고, 여기에 맞선 세력은 라미로 2세, 페르난 곤살레스, 나바라 출신 가르시아 산체스였습니다. 939년 8월 5일에 벌어진 '자모라 해자 전투'에서 아랍군이 승리했지만, 무려 5만 명의 무슬림 병사가 전사했고 압데라만 3세 본인도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라미로 2세는 곧 사모라를 회복하기 위해 돌아왔고, 이 전쟁은 운명이 오가며 수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아스투리아스와 레온의 왕 오르도뇨 3세(Ordoño III, 재위 950~955)는 리스본을 약탈한 뒤 레온으로 귀환하기도 했습니다.
압데라만 3세의 죽음과 문화적 유산
압데라만 3세는 961년 11월 15일 코르도바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알안달루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칼리프로 평가받습니다. 최초로 동전에 자신의 이름과 직함을 새겼으며, 학문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자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자녀들 또한 시인, 철학자, 역사가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메루안(Meruán) 궁전에는 당대 가장 현명한 학자들이 모여 지식의 모든 분야가 발전했고, 코르도바는 당시 문화의 중심지로 부상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유럽 최초의 의과대학인 '압데라만(Abderrahmán)' 의과대학을 설립했습니다. 비만 치료를 위해 아스투리아스와 레온의 왕 산초 1세(Sancho I)가 직접 이곳을 찾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 칼리프는 가장 사랑하는 아내를 기리기 위해 시에라모레나 산기슭에 궁전 도시 마디나 알자흐라(Madina al-Zahra)를 건설했습니다. 이 공사에는 1만 명의 노동자가 20년 넘게 참여했습니다. 그의 하렘에는 무려 6,000명의 여성이 거주했다고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