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전염병 치료법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웃음가스'의 이야기

천재였지만 '사람됨'은 부족했던 토머스 베도스

의학과 화학으로 학위를 마치고, 열정적인 식물학자였으며, 라틴어와 그리스어 문헌을 번역할 줄 알고 영어·프랑스어·독일어·이탈리아어·스페인어를 구사했으며, 심지어 인도의 베다 및 브라만 문헌 전문가이기도 했던 젊은 토머스 베도스(Thomas Beddoes). 그의 유망한 커리어는 기행(奇行)들과, 혁명의 프랑스를 흠모하며 영국 사회를 비판한 탓에 일찍 꺾이고 말았다. 말하자면 이른바 '사람 대하는 기술'이 없었던 것이다.

의학 분야에서 그는 특정 전염병을 치료하기 위한 가스 흡입 요법에 일종의 집착을 보였다. 토끼와 새끼 고양이, 심지어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여러 차례 좌절을 겪었음에도, 그는 자신의 혁신적인 치료법이 인류의 삶을 바꿀 것이며 조만간 모든 가정에 건강에 필요하고 유익한 가스를 생산하는 작은 장치가 갖춰질 것이라 확신했다. 낙관주의만큼은 넘쳤다.

외양간 공기를 들이마시게 하다?

연구 과정에서 토머스는 소를 돌보는 사람들이 결핵에 덜 걸린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이는 반드시 축사에서 흡입하는 김과 가스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 결론지었다. 그의 연구 결론에 따르면 결핵 환자에게는 외양간에서 나오는 숨 내기가 유익하다는 것이다. 말로 끝내지 않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1793년 그는 잉글랜드 브리스틀에 있는 자신의 진료소 환자 몇 명을 외양간에 딱 붙어 있는 건물로 옮겼고, 소들은 커튼 너머로 병상 쪽으로 머리를 내밀어 환자들이 자신의 입김을 들이마시게 했다. 게다가 그는 축사가 매우 쾌적한 온도를 제공한다는 이유까지 들며 자신의 방법을 옹호했다. 과학계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소 의학'에 그토록 열광했던 토머스는, 오늘날 우리가 천연두 백신, 나아가 백신 전반의 발견을 빚고 있는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의 업적에는 회의적이었다. 역설적으로 제너는 인류의 은인으로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왕립 의사회(Royal College of Physicians)에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페뉴매틱 연구소와 스무 살의 험프리 데이비

1799년 토머스 베도스는 가스를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한 기관인 페뉴매틱 연구소(Pneumatic Institution)를 설립했다. 그가 처음 고용한 조수 중 한 명은 첫날부터 남다른 열정을 보인 스무 살의 험프리 데이비(Humphry Davy)였다. 토머스 자신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었다.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직접 가스를 흡입하며 그 효과를 실험하기 시작했다. 그 기분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저승길에 갈 뻔했다. 가슴과 등 사이에 일산화탄소 4리터 이상이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 첫 좌절은 그에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고, 데이비는 계속해서 가스를 다루며 자기 몸으로 실험을 이어갔다. 마침내 그는 아산화질소(nitrous oxide), 즉 무수질소산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고, 당연히 직접 시험해 보았다…

"특히 가슴과 팔다리에서 매우 유쾌한 감각이 밀려왔다 […] 주위의 사물들이 눈부시게 다가왔고 청각은 예민해졌으며 맥박은 빨라졌다. 미친 사람처럼 실험실 주위를 뛰어다니게 만들었고, 그 후로도 내 기분은 눈부시게 고양되어 있었다."

웃음가스, 그리고 잊혀진 의학적 가능성

그 가스를 시험해 본 모든 이는 환상과 색채가 가득한 평행세계로의 여행을 경험했다. 휘발성이며 무색이고, 달콤하면서도 약간 독성 있는 냄새가 나는 그 가스는 다름 아닌 이른바 웃음가스(laughing gas)였다. 데이비는 황홀감과 환각은 잊고 의학적 활용 가능성을 찾았고, 통증을 없애 준다는 점에서 수술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직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웃음가스의 의학적 잠재력은 오랫동안 묻혀 버렸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먼저 치과의사들, 그다음 외과의사들이 비로소 이것을 마취제로 사용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