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압데라만 1세: 우마이야 왕조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알안달루스 에미르국의 건국자

압데라만 1세: 알안달루스 최초의 우마이야 에미르

압데라만 1세(Abderramán I, 재위 756~787)는 알안달루스(al-Andalus)의 무슬림 에미르로, 734년 시리아 다마스커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우마이야 칼리프 히샴(Hixem, 재위 724~743)의 손자였습니다.

우마이야 왕조의 몰락, 그리고 유일한 생존자

마지막 우마이야 칼리프 메르완 2세(Meruán II, 재위 744~750)가 사망하자 아바스 왕조는 우마이야 가문 전체를 학살했습니다. 그러나 젊은 압데라만은 당시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이 학살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베르베르족의 강대한 부족인 제네테스(Zenata)와 함께 북아프리카의 타하르트(Tahart)로 피신했습니다.

알안달루스 상륙과 에미르 즉위

알안달루스의 두 셰이크, 테만 벤 알카마(Teman ben Alkamah)와 와히브 벤 자히르(Wahib ben Zahir)는 타하르트까지 찾아가 알안달루스 주요 셰이크들의 명의로 모든 무슬림 부족의 주권을 압데라만에게 제안했습니다. 그는 이를 수락하고 756년 4월 8일 알무녜카르(Almuñécar, 그라나다)에 상륙했습니다.

상륙 직후 그는 자신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던 총독(왈리) 유수프(Yusuf)와 대립해야 했으며, 756년 5월 15일 과달키비르 강 전투에서 유수프를 격파했습니다. 이 승리로 압데라만은 알안달루스의 지배권을 확보했지만, 유수프와의 전쟁은 유수프가 마침내 항복하고 직함과 권력을 넘겨줄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유수프는 이후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가 759년에 살해당했습니다.

외부의 위협과 끊임없는 반란 진압

같은 해인 759년에는 프랑크 왕국의 단신왕 피핀(Pepin the Short)이 셉티마니아(Septimania)에서 무슬림을 축출하고 이 지역을 프랑크 왕국에 편입시켰습니다. 압데라만 1세는 재위 기간 내내 수차례의 반란을 진압해야 했는데, 프랑크 왕 샤를마뉴(Charlemagne, 742~814) 역시 사라고사 총독 술라이만 벤 약탄 엘 아라비(Soleim ben Yactán el Arabí)의 요청을 받고 이 반란 중 하나에 가담하여 압데라만 폐위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샤를마뉴는 사라고사에서 환영받지 못한 채 철수했고, 778년 8월 15일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에서 유명한 패배를 당했습니다.

통치 업적과 말년

779년 압데라만 1세는 토드미르 왕국(Kingdom of Tudmir)을 합병했고, 787년에는 셋째 아들 히샴(Hixem)을 후계자로 선포했습니다. 그는 같은 해 9월 30일 메리다(Mérida)에서 생을 마쳤으며, 11명의 아들과 9명의 딸을 두었습니다.

  • 코르도바 모스크 건설: 코르도바 대모스크의 건설을 시작했으며, 매일 한 시간씩 직접 공사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 군사 제도 정비: 알안달루스를 코르도바, 메리다, 무르시아, 톨레도, 발렌시아, 사라고사의 6개 군사 구역으로 나누어 통치 체계를 확립했습니다.
  • 해군 방어 체계 창설: 남부 해안 방어를 위해 제독(에미르 알마, '바다의 에미르')이라는 관직을 새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