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리고(Rodrigo)는 710년부터 711년까지 통치한 서고트족의 왕으로, 힌다스빈토(Chindasvinto) 왕의 아들인 테오도프레도(Theodofredo)와 바에티카(Baetica) 백작의 아들이었습니다. 비티차(Witiza) 왕 사후에 벌어진 내전에서 로드리고 진영이 승리하면서, 그의 지지 세력은 경쟁자였던 아길라 2세(Agila II)를 축출한 뒤 그를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이 왕의 역사는 매우 짧습니다. 재위 기간이 불과 1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와 그의 최후를 둘러싼 전설은 끝이 없습니다. 이를 제쳐두면, 서고트 왕국의 종말은 다음과 같이 전개되었습니다. 무슬림은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며, 수인틸라(Suintila) 통치 이후 서고트족 영토였던 세우타(Ceuta)를 위협했습니다. 당시 세우타 총독은 비티차 왕의 친구이자 가톨릭 신앙을 지닌 베르베르인 올반(Olbán)이었으며, 11세 말 실로스(Silos) 출신 수도사에 의해 처음으로 '율리안(Julián) 백작'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세우타는 매우 중요한 전략 거점이었습니다. 서고트족은 이베리아 반도를 향한 이슬람 세력의 침입 가능성에 대비해 지브롤터 해협을 방어하는 요충지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무슬림과의 동맹
비티차 왕 사후 내전이 계속되는 동안 서고트족은 세우타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고, 한때 왕위에 올랐던 아길라 2세는 형제 올문도(Olmundo)와 아르다바스토(Ardabasto)와 함께 피난처를 찾아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올반과 합의하고, 탕헤르(Tangier) 총독 타리크 이븐 지야드(Tarik ibn Ziyad)를 통해 북아프리카 무슬림 총독 무자 이븐 누사이르(Muza ibn Nusayr)와 협상을 진행하며 로드리고 왕 전복 계획을 세웠습니다. 올반은 무슬림에 복종하고 세우타 총독직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이베리아 반도로의 진로를 열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무슬림 원정대
서고트 왕국의 내분을 파악한 무자는 710년 7월, 베르베르 출신 자유민 타리프 아부 자라(Tarif Abu Zara)에게 보병 300명과 기병 100명을 주어 지브롤터 해협 인근 해안 지역을 정찰하게 했습니다.
이 400명의 병사들은 율리안 백작과 비티차파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네 척의 배로 해협을 건넜고, 나중에 타리파(Tarifa)라고 불리게 된 곳에 상륙했습니다(상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입니다). 그들은 신속히 알헤시라스까지 진격한 뒤 상당한 전리품을 챙겨 아프리카로 돌아갔습니다.
무슬림 침략
정찰대가 거둔 정보와 전리품을 근거로, 무자는 711년 봄 또 다른 원정대를 파견했습니다. 지휘관은 하마단(Hamadan) 출신 페르시아인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한 탕헤르 총독 타리크 이븐 지야드였습니다. 그는 7,000명의 베르베르인과 자유민(이 가운데 아랍인은 약 50명에 불과했다)을 이끌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넜습니다. 군대는 칼페 산 기슭에 도착했고, 타리크는 부하들을 기리는 의미에서 그곳을 야발 타리크(Jabal Tariq, '타리크의 산', 오늘날의 지브롤터)라고 불렀습니다. 이곳에서 7,000명은 알헤시라스로 진군해 곧바로 정복했으며, 이어 로드리고 왕의 조카 벤시오(Benzio)와 교전하여 그를 격파하고 살해했습니다. 귀족 윌리에신도(Wiliesindo)는 바스코네스(Vascones) 반란을 진압 중이던 로드리고 왕에게 무슬림 침공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로드리고는 침략자를 맞이하기 위해 신속히 왕국 남부로 행군을 개시했고, 약 10만 명의 대군을 이끌었습니다. 이에 타리크는 무자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무자는 추가로 베르베르 보병 5,000명을 파견했습니다. 병력 12,000명이 된 타리크는 711년 7월 19일 로드리고의 군대와 맞섰고, 전투는 다음 날까지 이어졌습니다. 결정적인 전투는 메디나시도니아(Medina-Sidonia)와 한다 호수(Lake Janda) 사이의 과달레테(Guadalete) 강변에서 벌어졌습니다. 로드리고 왕은 군대의 중앙을 직접 지휘했고, 좌우 익(翼)의 지휘권은 선왕 비티차의 두 형제 시스베르토(Sisberto)와 오파스(Oppas)에게 맡겨졌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지휘 위치를 버리고 침략자 편에 섰습니다. 로드리고의 군대는 용감하게 싸웠지만, 타리크의 의도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국가는 로드리고 왕과 함께 운명을 함께했습니다.
앞서 왐바(Wamba) 통치기(672~680)에 이슬람 세력이 처음으로 이베리아 반도 침공을 시도했으나, 왐바의 군대가 이를 저지하며 적선 270척을 불태웠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711년에 로드리고 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왕국 반대편에서 앞서 언급한 반란을 진압하러 가지 않았다면, 12,000명의 병력만으로는 서고트 왕국을 침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설령 의도치 않았더라도, 율리안 백작과 비티차파의 배신보다 더 결정적으로 711년 이슬람의 이베리아 반도 침공을 초래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