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저주받은 성, 서들리 성: 소유주마다 불행이 닥친 영국 600년 역사의 현장

저주받은 성, 서들리 성: 소유주마다 불행이 닥친 영국 600년 역사의 현장
원래 서들리 성(Sudeley Castle) 건물의 유적(사진: 저자 기록 보관소)

아름다운 윈콤베(Winchcombe) 마을을 지나 영국 시골길을 따라 약 500미터만 걸으면 서들리 성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이 고즈넉한 성 안에는 역대 소유주들이 수백 년에 걸쳐 겪어온 불행한 운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랄프 보텔러, 잘못된 편을 선택하다

서들리 성은 1443년 왕실 재무관으로 임명된 랄프 보텔러(Ralph Boteler)가 15세기에 건설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영국은 결코 평온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두 왕가의 대립이 폭발한 '장미전쟁(Wars of the Roses)'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더욱 위험해졌습니다. 보텔러는 운 나쁘게도 랭커스터 가문, 즉 패자가 될 편을 선택했습니다.

요크 가문의 에드워드가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보텔러는 다른 많은 랭커스터파보다 나은 처우를 받아 목숨은 건졌습니다. 그러나 정성껏 지은 성을 왕에게 내놓아야 했고, 왕은 장미전쟁 당시 자신의 핵심 지지자였던 동생 글로스터 공작(Duke of Gloucester)에게 이 성을 하사했습니다. 보텔러는 결국 자신이 가장 아끼던 성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새 주인의 이름은 리처드 3세

그렇다면 새 주인의 운명은 어땠을까요? '글로스터 공작'이라는 칭호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1483년 요크의 에드워드 4세가 세상을 떠나자 이 인물은 '리처드 3세'라는 이름으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영국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확실히 익숙한 인물일 것입니다.

저주받은 성, 서들리 성: 소유주마다 불행이 닥친 영국 600년 역사의 현장서들리 성에 전시된 리처드 3세의 흉상(사진: 저자 기록 보관소)

리처드 3세는 서들리 성을 차지한 뒤 보텔러의 초기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다양한 개축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조카인 '런던탑의 왕자들'이 미스터리하게 실종되는 등 온갖 논란에 휩싸였던 리처드 3세의 통치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485년 8월 22일, 보스워스 전투(Battle of Bosworth)에서 헨리 튜더의 군대에 패해 전사하면서 그의 통치는 갑작스럽고도 폭력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튜더 왕조와 시모어 형제의 비극

리처드 3세가 죽은 뒤 서들리 성은 튜더 왕조의 재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헨리 8세의 아들 에드워드 6세가 이 성을 흥미로운 인연이 얽힌 한 인물에게 하사합니다.

헨리 8세가 여섯 번 결혼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세 번째 아내가 제인 시모어(Jane Seymour)였고, 이 결혼에서 에드워드 6세가 태어났습니다. 에드워드 6세는 서들리 성을 자신의 외삼촌, 즉 어머니 제인 시모어의 오빠 토마스 시모어(Thomas Seymour)에게 넘겼습니다.

저주받은 성, 서들리 성: 소유주마다 불행이 닥친 영국 600년 역사의 현장
서들리 성 내 세인트 메리 교회(St. Mary's Church)의 아름다운 예배당.
캐서린 파(Katherine Parr)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사진: 저자 기록 보관소).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 것은, 토마스 시모어가 헨리 8세의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아내인 캐서린 파와 재혼해 서들리 성에서 함께 거주했다는 점입니다. 캐서린 파의 비극적인 최후는 별도의 블로그 글에서 자세히 다루었는데,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캐서린은 토마스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다가 사망했고, 딸 역시 고작 두 살의 어린 나이에 요절했으며, 토마스 시모어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반역죄로 처형되었습니다.

내전의 참화, 폭파된 성

그러나 서들리 성 거주자들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메리 튜더(Mary Tudor) 여왕은 존 브리지스 경(Sir John Brydges)에게 성의 소유권을 넘겼고, 서들리의 상황은 17세기 중반 찰스 1세 스튜어트의 왕당파와 올리버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파 사이에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비교적 조용히 이어졌습니다.

서들리 성은 왕실과 의회 세력 사이의 전략적 요충지임을 알게 되었고, 존 브리지스 경의 후손들은 왕실의 대의에 기울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 서들리 성의 주인은 패자 편에 서고 말았습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크롬웰의 전쟁위원회는 성을 폭파할 것을 명령했고, 그 결과는 이 글 상단의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서들리 성

19세기에 들어서며 현재의 소유주인 애슈콤브 경(Lord Ashcombe)과 애슈콤브 부인(Lady Ashcombe)의 손으로 서들리 성 부지에 새 건물이 세워졌습니다. 오늘날 성 안에는 서들리 성의 다양한 소유주들과 관련된 방들을 둘러볼 수 있는 박물관이 마련되어 있으며, 그중에서도 헨리 8세와 그의 여섯 아내의 모습이 재현된 방이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저주받은 성, 서들리 성: 소유주마다 불행이 닥친 영국 600년 역사의 현장서들리 성 소유주들이 사용한 아름다운 거처(사진: 저자 기록 보관소)

저주받은 성, 서들리 성: 소유주마다 불행이 닥친 영국 600년 역사의 현장
헨리 8세와 그의 여섯 아내(사진: 저자 기록 보관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