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행군을 감행한 미리아(만인 부대)는 마침내 흑해 연안의 그리스 도시 트레비존드에 도착했다. 그곳 주민들은 적대 세력에 맞서 승리하기 위해 그들의 도움을 요청했다. 가장 큰 적은 케라순다와 트레비존드 사이 지역에 살던 또 다른 야만 종족, 드릴레스(Drilles)였다.
그리스인들은 드릴레스를 상대로 대규모 작전을 개시했다. 크세노폰의 지휘 아래 약 5,000명의 병사가 모였고, 트레비존드의 안내자들과 함께 드릴레스의 영토를 공격했다. 드릴레스는 이 지역 최고의 전사들로 여겨졌지만, 그리스군은 기습을 통해 적의 많은 거점과 요새를 차례로 함락시키는 데 성공했다.
협곡이 지킨 요새 도시
이후 드릴레스는 수도에 집결했다. 수도는 극도로 가파른 지형 위에 축조된 성벽 도시로, 깊은 협곡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다. 이 도시를 공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병사들은 협곡을 건너 유일하게 접근 가능한 방향에서, 병력이 빽빽하게 배치된 성벽을 공격해야 했다.
주력부대의 선봉인 그리스 펠타스트(경장보병)들은 호플리테스보다 약 1km 앞서 이동했다. 협곡에 도달하자 그들은 곧바로 건너 적의 방어 시설 앞에 다다랐고, 뒤이어 호플리테스 한 부대가 합류해 결국 약 2,000명의 그리스 병사가 성벽 앞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적들은 이 기습을 쉽게 막아냈다. 그들은 목책과 해자 뒤에서도 추가로 요새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000명의 그리스군은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 처해 완전한 궤멸의 위기에 몰렸다. 통과 불가능한 협곡을 통해 후퇴하려 한다면 큰 피해가 불가피했다. 고립된 부대는 크세노폰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냈고, 메시지를 받은 크세노폰은 즉시 현장으로 달려갔다.
크세노폰의 결단
적 진영과 마주 보는 협곡 가장자리에 도착한 크세노폰은 병사들을 정렬하고 장교들과 함께 지형을 정찰했다. 고민은 하나였다. 고전하는 2,000명의 후퇴를 엄호할 것인가, 아니면 적의 요새 도시에 대한 총공격을 감행할 것인가.
결국 그는 도시를 함락하는 쪽이 포위된 부대를 후퇴시키는 것보다 더 용이하다고 판단했다. 후퇴 작전은 그리스인의 피를 값비싸게 치르게 될 것이므로,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 그가 직접 먼저 협곡을 건너갔고, 동시에 각 대장들에게 병사들의 도강을 명령했다. 이후 크세노폰은 2,000명의 고립 부대를 재편성하고 경보병을 직접 지휘하에 두어, 전군의 도강이 끝나면 총공격을 개시할 준비를 마쳤다.
총공격, 파이안과 함께
잠시 후 그리스군은 적의 방어선 바로 앞, 활이 닿는 거리에서 전열을 갖추었다. 크세노폰은 펠타스트들에게 대열을 밀집시키고 창을 쥔 채 즉시 돌격할 준비를 하라고 명령했으며, 궁수들 역시 활시위에 화살을 먹인 채 대기했다. 그리스군은 성벽의 선을 따라 길게 전열을 폈다.
나팔 소리가 울리자마자 병사들은 파이안(승전가)을 노래했고, 전쟁신 에니알리우스 아레스를 찬양하는 함성을 지르며 적에게 돌진했다.
화력 지원과 성벽 돌파
펠타스트와 프실로이(궁석병)가 적을 공격하며 전투의 막이 올랐다. 그들의 목적은 드릴레스 성벽의 수비대를 은신처로 몰아붙여, 일부가 불붙은 횃불을 든 호플리테스들이 방해받지 않고 방어 시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스군의 합동 공세 앞에 야만인들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어 격렬한 성벽 전투가 벌어졌다. 드릴레스는 성벽 위에서 돌을 던졌고, 수백 개의 투창과 화살이 하늘을 어둡게 덮었다. 그러나 어떤 드릴레스가 손을 뻗어 그리스 병사를 치려는 순간, 크레타 궁수들의 명중률 높은 화살에 맞아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프실로이의 화력 지원 덕분에 그리스 호플리테스들은 적의 성벽을 오르고 도시 안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가장 먼저 진입한 것은 아가시아스 스팀팔리우스와 필록세노스 팔리네우스였다. 두 사람은 방패와 창을 내려놓고 고양잇과 동물처럼 민첩하게 성벽을 타고 올라갔다. 그리스 궁석병들의 지원 사격이 너무나 정확해서, 무장하지 않은 두 사람조차 적의 공격에 조금도 상처 입지 않았다. 크세노폰의 계획은 다시 한번 탁월함을 입증했다. 아마추어 출신의 아테네 장군은 이제 놀라운 전술가로 거듭난 것이었다.
성채의 반격과 화염 장벽
한편 적들은 성벽 전열을 완전히 내팽개치고 도시 내부의 요새화된 성채로 피신했다. 그리스 펠타스트들이 그 뒤를 추격했다. 크세노폰은 활짝 열린 성문에 서서, 좁은 통로에서의 과밀을 우려해 병사들의 진입을 통제했다. 그는 또한 다른 적들이 주변 언덕에 모여들기 시작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예비 부대를 곁에 확보해 두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도시 내부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고, 진입했던 그리스군은 무질서하게 도시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성채에 근거한 적들의 반격에 밀린 것이다. 크세노폰은 즉시 성 밖의 병사들에게도 진입을 명령했고, 그들은 힘을 합쳐 적을 다시 추격해 성채 안으로 몰아넣었다.
이제 크세노폰은 적의 성채마저 함락하는 것을 검토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군대는 성채에 갇힌 적과 주변 언덕에 자리 잡은 적 사이에서 협공당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현존하는 수단과 조건으로는 성채 함락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어둠이 내리면서 그리스군의 처지는 더욱 악화되었다. 하지만 크세노폰은 해법을 찾아냈다.
그는 병사들에게 성문 앞에 장작더미를 쌓으라고 명령했다. 도시 안의 병사들이 드릴레스에게 쫓겨 나오는 순간 장작더미에 불이 붙었고, 철수하는 그리스군과 드릴레스 사이에 화염의 장벽이 만들어졌다. 동시에 도시의 일부 목조 가옥에도 불을 질렀는데, 이는 야만인들이 불을 끄느라 분주해지고 그리스군을 괴롭히는 것을 멈추게 하기 위한 계산이었다.
완벽한 철수
이튿날 새벽 첫 빛과 함께 그리스군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철수했다. 드릴레스는 성채를 제외한 도시 전체를 삼켜버린 불을 진압하려 애썼지만 허사였다. 다만 철수하는 그리스군에게는 여전히 숲이 우거진 길목에 버티고 있는 도시 밖의 드릴레스가 위협으로 남아 있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크세노폰은 적들이 반드시 매복한 그리스군을 목격할 수밖에 없는 지점에 매복을 설치했다. 그 목적은 적을 겁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성공했다. 군대가 아무런 방해 없이 철수하는 동안, 드릴레스는 매복한 그리스군을 미끼로 여기고 공격했다가는 함정에 빠질 것이라 믿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리스군 주력이 물러나는 것을 보고서야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은 드릴레스는 소수 부대를 공격했지만, 단 한 명의 병사에게 경상을 입히는 데 그쳤다. 이처럼 크세노폰의 전략 덕분에 군대는 미미한 손실로 철수에 성공했으며, 그 손실조차 모두 드릴레스 도시 주변과 내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이로써 이 지역에서 가장 무예 뛰어난 종족으로 일컬어지던 드릴레스는 그리스군의 힘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