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관문, 유노의 달
여름의 시작을 여는 6월은 여신 유노(Juno)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녀는 유피테르(Jupiter)의 아내이자 하늘의 여왕으로, 그리스-로마 종교의 융합 과정에서 원래의 신격과 기능에 변화가 일어났다. 유노는 자연과 결혼의 수호신이기도 했다.
한편 이 달이 젊은이를 뜻하는 라틴어 주니오르(junior)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고대 로마력에서 6월은 한 손에는 횃불을 들고 다른 손의 검지로 해시계를 가리키는 알몸의 젊은 여성으로 상징되었다. 이는 이 달부터 태양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 횃불은 여름 들녘을 물들이는 다채로운 빛깔을 상징한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이우니우스라는 이름은 로마 역사에서 이 씨족(gens)의 첫 인물인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Lucius Junius Brutus)에서 왔다고 한다. 에트루리아 계통의 마지막 왕이자 자신의 숙부인 타르퀴니우스 슈페르부스(Tarquin the Proud)를 추방한 뒤, 그는 로마의 초대 집정관이 되었다. 새로 탄생한 공화국 원로원의 비준을 받아 직무를 수행하던 그는 자유를 기원하며 인간의 생명을 창조하는 여신 카르나(Carna)에게 공개 제사를 지냈다.

이다 산 위의 유피테르와 유노(1790~1799), 제임스 배리
6월 초순의 의례들
칼렌즈(Kalends), 카르나 여신의 날
6월 첫날인 칼렌즈에는 앞서 언급한 카르나 여신을 기리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디아나의 자매이기도 한 그녀는 남성의 생식기, 소화 기능, 문지방을 함께 보호하는 다재다능한 신이었다. 특히 경첩의 여신으로서 닫힌 것을 열고 열린 것을 닫는 힘을 지녔으며, 기생충과 흡혈귀를 쫓아내기도 했다. 이날 사람들은 광염콩과 베이컨을 먹었는데, 당시의 믿음에 따르면 이 의식이 1년 동안 남성성을 유지시켜 준다고 여겨졌다. 흥미롭게도 이 달 첫 2주 동안에는 결혼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4일, 트로이의 멸망을 기억하다
4일에는 트로이의 함락과 로마 건국자들의 전설적 조상 아이네이아스의 도피가 기념되었다.
5일, 맹세의 여신 피데스(Fides)
5일에는 맹세의 여신 피데스(Fides)에게 기도가 올려졌다. 맹세는 반드시 열린 하늘 아래에서 행해야 했기 때문에 여신의 신전은 지붕 없이 열려 있었다. 이 의식은 사비니족 출신의 맹세의 신 세모 상쿠스(Semo Sancus)와도 연결되며, 그는 세월이 흐르면서 헤라클레스 숭배에 흡수·융합되었다.
8일, 멘스(Mens)와 비너스(Venus)
8일은 멘스(Mens)와 비너스(Venus)에게 바쳐졌다. 로마에는 카르타고군과의 트라시메노 호수 전투의 참화를 막고자 이들의 신전이 세워졌다. 이성의 여신 멘스는 갓난아기에게 올바른 판단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맡았다고 전해진다.
베스탈리아, 성화를 지키는 처녀들
9일에는 베스탈리아(Vestalia)가 열렸다. 원형의 베스타 신전 안에는 어떤 저수 시설도 둘 수 없었다. 물은 불의 적이기 때문이다. 베스타의 성스러운 불꽃은 항상 켜져 있어야 했고, 베스탈 처녀들이 삼엄하게 지켰다. 만약 불이 꺼지면 비옥한 나무의 나뭇조각 두 개를 비벼 다시 붙여야 했다. 이 불은 일 년에 단 한 번, 페브라리우스(Febrarius)의 마지막 날에만 꺼질 수 있었으며, 옛 로마 공화국 연도의 끝이자 시작인 마르티우스(Martius) 첫날에 새로운 불꽃으로 갱신되었다.
물을 저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베스탈 처녀들은 일상 업무에 필요한 물을 매일 카메나에(Camenae)의 샘까지 직접 길어 와야 했다. 이때 쓰인 그릇은 푸틸레(futile)라 불리는 특수 항아리로, 입구가 넓고 바닥이 뾰족하여 물을 가득 채운 채로는 세워 둘 수 없는 형태였다. 베스탈리아는 제빵사와 제분사들의 콜레기움(collegium)이 특히 성대하게 기렸는데, 이들은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불과 직접 맞닿는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베스타에게 봉헌된 동물이자 맷돌을 돌리던 당나귀들도 축제에 동참해 화환과 빵으로 만든 목걸이로 장식되었고, 이날 쉬어 가는 맷돌 역시 같은 장식으로 꾸며졌다. 로마의 부인들은 대지, 곧 여신 헤스티아/베스타와 직접 닿기 위해 맨발로 신전을 찾았다.
마트랄리아와 미네르바의 축제
11일에는 마트랄리아(Matralia)가 거행되었다. 이 의식은 새벽의 여신이자 출산의 수호신인 마테르 마투타(Mater Matuta)에게 바쳐졌다. 그녀의 권능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여, 제정 시대에는 항해자의 수호신이 되었다. 한 번뿐인 결혼 생활을 지낸 여인들이 조카들을 데리고, 여신께 바치는 과자인 테스투아키아(testuacia)를 들고 포룸 보아리움의 신전을 찾았다.
6월의 이데스(Ides)에는 여신 미네르바(Minerva)를 기리는 소규모 킨쿠아트루스(quinquatrus minusculae)가 열렸다.
하지의 밤, 산 후안의 밤의 기원
23일에는 유피테르와 유노의 결혼이 축하되었다. 이는 매우 특별한 날, 바로 하지(夏至)였다. 또한 이날은 불에서 태어난 로마의 전설적 왕 세르비우스 툴리우스(Servius Tullius)의 날이기도 했다. 그는 포르투나의 총애를 받았으나 친딸의 손에 암살당했다. 그를 기리며 사람들은 밤새 모닥불을 밝혀 햇빛이 사그라들지 않기를 빌었다. 좋은 징조를 얻으려면 이 모닥불을 홀수 번, 되도록이면 세 번이나 일곱 번 뛰어넘어야 했다. 지중해 연안에서는 오늘날에도 이 고대 의식이 이어지고 있으며, 지금은 산 후안의 밤(Night of San Juan)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24일은 명백히 변화의 신 야누스(Janus)에게 헌정된 날이었다. 이날은 겨울의 문이 신들의 문이라 불리는 것과 대비되어 인간의 문이라 불렸는데, 이 날짜부터 낮이 짧아지기 때문이다.
달의 마지막 날, 아홉 뮤즈
30일은 뮤즈들에게 바쳐졌다. 아홉 개의 긴 사랑의 밤에서 태어난 아홉 자매인 그들은 세상 예술의 수호자이다. 각각의 이름과 맡은 분야는 다음과 같다.
칼리오페(Calliope): 서사시
클리오(Clio): 역사
폴리님니아(Polymnia): 무언극
유테르페(Euterpe): 플루트
텔프시코레(Terpsichore): 경시(가벼운 시)와 무용
에라토(Erato): 합창 서정시
멜포메네(Melpomene): 비극
탈리아(Thalia): 희극
우라니아(Urania): 천문학
가브리엘 카스텔료(Gabriel Castelló) 협력, 『로마의 숙적들(Archienemies of Rome)』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