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기원전 1208년 리비아 전투, 바다의 민족이 잃은 것들: 메르넵타의 충격적인 전과 기록

바다의 민족(Sea Peoples)은 기원전 2천년기 동안 이집트와 근동 지역 연안을 반복적으로 습격한 지중해 선원들의 느슨한 연합체였습니다. 고정된 구성원도, 지속적인 조직도 없었던 이들의 침입은 나일 삼각주와 해안 마을에서 자주 벌어졌으며, 이집트의 적들과 동맹을 맺어 약탈을 일삼기도 했습니다.

메르넵타(Merneptah)는 고대 이집트 제19왕조의 네 번째 파라오로, 60세의 나이에 즉위한 군주였습니다. 기원전 1208년, 그는 리비아인(리부, Libu — 오늘날 '리비아'라는 국명의 어원이 된 종족)과 결정적인 전투를 벌였고, 당연히 바다의 민족도 리비아 진영에 합류해 있었습니다. 카르나크 신전에 새겨진 원정 기록이 보여주듯, 메르넵타의 승리는 압도적이었습니다.

기원전 1208년 리비아 전투, 바다의 민족이 잃은 것들: 메르넵타의 충격적인 전과 기록

이집트 군대는 전리품을 꼼꼼히 계산하고 기록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전사한 적의 시신에서 성기를 잘라내고, 적이 포경 수술을 한 경우에는 오른손을 잘랐는데, 이를 하나하나 세어 전과를 집계했습니다. 그렇게 남겨진 처치 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리비아인 6,359명 (장군 6명 포함)
에쿠웨쉬(Ekwesh) 2,201명 (그리스 서부의 아카이아인으로 추정)
셰켈레쉬(Shekelesh) 222명 (시칠리아인으로 추정)
투르샤(Tursha) 742명 (티레니아 또는 에트루리아로 추정)
샤르다나(Shardana) 200명 (사르디니아인으로 추정)

합계 9,500여 명. 이 기록은 단순한 왕의 선전을 넘어, 당시 이집트 행정의 정밀함과 청동기 시대 전쟁의 잔혹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귀중한 1차 사료로 평가됩니다.

출처: Robert Drews, 『청동기 시대의 끝: 전쟁과 재앙의 변화(The End of the Bronze Age)』 / David M. Friedman, 『A Mind of Its Own: A Cultural History of the Pen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