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알폰소 6세, 왜 엘 시드를 추방했나? 1079년 세비야 사건의 진실

1079년, 카스티야의 국왕 알폰소 6세는 휘하의 기사 엘 시드(로드리고 디아스)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깁니다. 바로 세비야 타이파로 파리아(타이파가 기독교 왕국에 바치던 보호 공물)를 징수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평화 유지와 다른 타이파의 공격으로부터 세비야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알폰소 6세, 왜 엘 시드를 추방했나? 1079년 세비야 사건의 진실

세비야의 왕 알무타미드와 엘 시드가 공물 징수를 진행하던 중, 급보가 전해집니다. 그라나다 타이파의 왕 압드 알라가 기독교 연합군과 함께 세비야로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기독교군은 나헤라 백작 가르시아 오르도녜스가 이끌고 있었는데, 그는 알폰소 6세의 절친한 측근이었습니다.

엘 시드는 전면전을 피하려 애썼지만, 가르시아 오르도녜스의 도발에 결국 알무타미드의 군대와 합류하여 그라나다 연합군과 교전하게 됩니다. 이른바 카브라 전투에서 엘 시드는 그라나다와 그 동맹군을 완패시켰고, 가르시아 오르도녜스와 그라나다의 왕을 포로로 잡아 이틀 밤 사슬에 묶어 굴욕을 안겼습니다. 알무타미드는 공물을 성실히 지불했을 뿐 아니라, 바비에카 검을 포함한 귀중한 개인 선물까지 엘 시드에게 하사했습니다.

그러나 궁정으로 돌아온 엘 시드는 치명적인 두 번째 실수를 저지르고 맙니다. 알폰소 왕의 명령에 따라, 그는 왕의 동생 가르시아(아버지 페르난도 1세가 사망 후 갈리시아를 물려준 인물)가 유폐되어 있던 루나 성에서 하룻밤을 머문 것입니다.

나헤라 백작 가르시아 오르도녜스는 이 두 사건을 빌미로 삼아 엘 시드를 맹렬히 고발합니다. 세비야의 파리아 일부를 가로챘고, 왕의 동생 가르시아와 공모하여 왕위를 노린다는 혐의였습니다. 알폰소 6세는 측근의 말을 믿고 1081년, 엘 시드를 카스티야에서 추방합니다.

역사적으로 고려할 점(HDH):

  • 알폰소 6세는 엘 시드보다 측근 가르시아 오르도녜스를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 타이파 간의 대립은 기독교 왕국에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그라나다(가르시아 오르도녜스와 연계)와 세비야 간의 갈등은 기독교 궁정에서 의도적으로 조작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 엘 시드는 파리아를 정당히 징수했고, 알무타미드로부터 받은 것은 공물이 아닌 개인 선물이었습니다. 즉, 세비야에서 가져온 재물은 온전히 정당한 몫이었다는 것입니다.
출처: 『역사의 길』 – 후안 안토니오 세브리안, 『진실과 전설』 – 호세 루이스 올라이솔라, 『스페인의 결정적 순간들』 – 구스타보 비야팔로스

알폰소 6세, 왜 엘 시드를 추방했나? 1079년 세비야 사건의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