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혁명 당시 국민의회는 자유와 평등을 내걸고 탄생했지만, 정작 혁명의 주역 중 하나였던 농민들의 지지는 점차 잃어갔습니다. 그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복합적인 원인들이 있었습니다.
1. 농민들의 요구가 외면당함
국민의회는 재산권 보호와 세금 제도 개편 등 부르주아지의 이익에 주로 집중했습니다. 반면 토지 확보나 채무 경감처럼 농민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안에는 우선순위를 두지 않았고, 이는 농민들에게 깊은 실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2. 경제 위기와 인플레이션
혁명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의회가 발행한 지폐 '아시냐(assignat)'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가치가 급격히 하락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농민들의 저축과 구매력이 잠식당하며 생계가 크게 위협받았습니다.
3. 봉건 특권 폐지의 한계
국민의회는 농노제와 각종 봉건적 특권을 공식적으로 폐지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무거운 세금과 빚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에, 농민들의 실질적인 경제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4. 혁명의 급진화
자코뱅파와 같은 급진 세력이 부상하면서 혁명은 점차 과격해져 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농민들은 소외감을 느꼈고, 그동안 내놓았던 온건한 요구들은 급진적 정치 담론 속에 묻혀버렸습니다.
5. 종교 문제
대부분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프랑스 농민들은 교회의 권한을 축소하고 교회 재산을 몰수하는 국민의회의 정책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종교적 신념과 정부 정책 간의 충돌은 농민들의 불만을 한층 더 증폭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