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매춘부가 교황을 지배했던 시절, '포르노크라시'라 불린 교회의 암흑기

교회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절, ‘포르노크라시’

904년 세르지우스 3세의 즉위부터 964년 요한 12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약 60년간의 교황청 역사는 ‘사이쿨룸 옵스쿠룸(Saeculum Obscurum, 암흑시대)’이라 불린다. 이 명칭은 16세기의 추기경이자 역사가였던 체사레 바로니오가 저서 『교회 연보(Ecclesiastical Annals)』에서 처음 붙인 것으로, 오늘날에는 ‘매춘부의 통치’ 혹은 ‘포르노크라시(Pornocracy, 창정치)’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시기 교황들은 사실상 두 명의 매춘부, 즉 모녀 테오도라와 마로치아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매춘부가 교황을 지배했던 시절,  포르노크라시 라 불린 교회의 암흑기

▲ 테오도라와 마로치아

침대에서 시작된 권력

레오 5세가 사망한 뒤, 스폴레토 가문과 그의 사촌 테오필락투스(로마의 원로원 의원이자 군사 총독)의 지지를 받은 세르지우스 3세가 904년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 공을 인정받은 테오필락투스는 베스타라리우스(vestararius), 즉 교황청의 재정을 쥔 관리직에 임명된 뒤 집정관이 되었고, 그의 아내는 로마의 세나트릭스(senatrix) 칭호를 얻었다. 아내 테오도라 역시 새 교황을 지지했는데… 다만 침대 위에서였다. 그녀는 교황이 내리는 가장 중요한 결정들을 몸소 '도와주는' 위치에 있었다. 15세의 나이에 어머니의 발자취를 따른 마로치아 역시 교황의 침대를 거쳤고, 그 사이에서 아들 요한을 낳았다.

세르지우스 3세가 죽자 테오도라는 후계 교황 세 명을 차례로 지목했다. 아나스타시우스 3세(911~913), 재임 반년 만에 사망한 란도, 그리고 914년의 요한 10세였다. 2년 뒤 테오도라가 세상을 떠나자, 마로치아가 실권을 물려받았다.

모녀를 잇는 절대 권력

마로치아는 첫 남편인 스폴레토 출신 알베리코 1세와의 사이에서 요한 외에 또 한 명의 아들 알베리코 2세를 두었다. 그녀는 요한 10세와 이내 갈등을 빚었고, 두 번째 남편인 토스카나의 구이도의 권력을 등에 업고 그를 유폐시켰다. 요한 10세는 옥중에서 수수께끼 같은 정황 속에 생을 마감했다. 어머니처럼 그녀 역시 세 명의 교황을 지목했다. 928년 일곱 달만 재임한 레오 6세, 928~931년의 스테파노 7세, 그리고 931~935년의 요한 11세—바로 그녀가 세르지우스 3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었다. 아들 요한 11세는 어머니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했고, 마로치아는 ‘로마 원로원 귀부인(Senatrix Patricia Romanorum)’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두 번째 남편이 죽자 마로치아는 이탈리아 왕 우고와의 재혼으로 권력을 확장하려 했다. 그러나 여기엔 크고 작은 문제가 있었다. 작은 문제란, 혼인을 무효화해야 했는데 그녀의 한 아들이 바로 교황이라는 점… 그리고 큰 문제란, 다른 아들 알베리코 2세가 이 혼사에 맞서 반대 진영을 이끌었다는 사실이었다.

매춘부가 교황을 지배했던 시절,  포르노크라시 라 불린 교회의 암흑기

▲ 우고와 마로치아의 결혼식

아들의 반격, 그리고 요한 12세

알베리코 2세는 ‘로마인의 공작 겸 원로원 의원(princeps et senator Romanorum)’ 칭호를 내걸고 로마를 통치했다. 어머니가 이탈리아 왕 우고와 약혼식을 올리던 그날, 그는 어머니를 체포해 감금했고, 마로치아는 93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끝내 석방되지 못했다. 아들은 어머니의 역할을 이어받아 교황 임명을 계속 주도하다가, 955년에는 자신의 아들—즉 마로치아의 손자이자 테오도라의 증손자인 요한 12세—를 교황으로 앉혔다. 요한 12세는 964년까지 성 베드로의 자리를 지켰다.


출처: Italy and the Papal Pornocracy, Saeculum Obscurum, Christian Pornocracy & The Rule of the Wh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