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한 조각이 촉발한 국제 분쟁, '수박 전쟁'
역사에는 사소한 계기가 거대한 격변으로 번진 사례가 많습니다. 1856년 파나마에서 벌어진 수박 전쟁(Watermelon War)도 그중 하나입니다. 단독 5센트짜리 수박 한 조각을 둘러싼 말다툼이 미국과 누에바 그라나다 공화국 간의 유혈 충돌과 외교 위기로 확대되었고, 결국 막대한 배상금 지급이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씨앗이 된 조약: 말라리노-비들락 조약(1846)
사건의 배경에는 말라리노-비들락 조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846년 12월 12일 미국과 누에바 그라나다 공화국(오늘날의 콜롬비아와 파나마) 사이에 체결된 이 무역 호혜 협정은 미국의 경제적·상업적 이익에 크게 유리하게 설계되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현지 주민보다 미국 시민에게 훨씬 유리한 조항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일부 미국인들은 이런 특권적 지위를 합법적으로 이용해 학대, 폭력, 무책임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고, 지역 주민들의 의심과 분노는 날로 깊어갔습니다. 폭탄은 이미 설치되어 있었고, 남은 것은 불씨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씨는 의외로도 수박 한 조각이었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 Xurxo Vázquez
1856년 4월 15일, 수박 값을 두고 벌어진 비극
잭 올리비에(Jack Olivier)를 포함한 미국인 무리가 4월 15일, 몇 시간 동안 술을 마신 채 기차역을 지나가다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잭은 노점에서 수박 한 조각을 집어 들었고, 노점상 호세 마누엘 루나(José Manuel Luna)가 가격 5센트를 요구했지만 잭은 돌아서서 걸어갔습니다. 판매자가 다시 대금 지불을 요구하자 잭은 계속해서 이를 무시했습니다. 호세 마누엘이 칼을 꺼내 위협하자, 오만하던 잭은 오히려 권총을 뽑아 그를 겨눴습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군중 속에서 감정이 폭발했습니다. 미국인들과 현지 주민들 사이의 몸싸움은 곧 대규모 난투극으로 번졌고, 그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미국인 15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부상당했으며, 현지인 측에서도 2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습니다.
국제 분쟁으로 번지다
갈등은 즉시 국제 문제로 비화되었습니다. 미국 측은 지방 당국이 질서를 유지하지 못했다고 강하게 비난했지만, 프랑스와 영국 영사들의 보고는 반대로 잭 올리비에의 무리가 사건을 먼저 일으켰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현지 주재 미국 공사 아모스 코와인(Amos Corwine)이 "지협 즉각 점령"을 권고하는 보고를 내놓자, 기차역을 점거하기 위해 병력 160명으로 구성된 파견대를 파나마로 급파했습니다.
다행히 실제 교전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점령 3일 후 현지 당국이 협상에 응하자, 군인들은 총 한 발도 발사하지 않고 철수했습니다.
결말: 에란-카스 조약과 41만 달러의 배상금
1857년 9월 10일 체결된 에란-카스 조약(Herrán-Cass Treaty)으로 사태는 마무리되었습니다. 누에바 그라나다 공화국은 자국민의 잘못을 인정하고, 미국인 피해자들에게 손해 배상금으로 금화 412,394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시작은 5센트짜리 수박 한 조각이었지만, 그 대가는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었던 셈입니다.
사소한 무례함이 얼마나 큰 참사와 외교적 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으로, 수박 전쟁은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습니다.
삽화: Xurxo Vázquez
출처: 고딕 왕들의 목록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