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단 한 발의 총성도 없이 172년, 스페인 후에스카가 덴마크에 전쟁을 선포하다

여행자에게 후에스카(Huéscar)를 찾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알바세테와 하엔 주 경계에 인접한 그라나다 현의 이 작은 자치시는 훌륭한 세구레냐 양을 키우는 곳으로, 그 갈비살은 별미로 손꼽힌다. 멜랑콜리한 폐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카를로스 3세 운하의 거대하지만 끝내 완공되지 못한 공사터를 바라보는 묘미도 느낄 수 있다. 타호-세구라 운하의 위대한 선례인 이 운하는 펠리페 2세 시절 구상되었으나 공사는 오랫동안 방치되다가, 카를로스 3세가 진지하게 프로젝트를 추진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중단시켰다.

172년간 이어진 기이한 전쟁

그러나 아마도 가장 매력적이고 기이한 이유는, 이 작은 지자체가 1809년에 어떻게 덴마크에 전쟁을 선포하게 되었는지 그 비밀을 파헤치는 일일 것이다. 평화 조약이 체결된 것이 1981년에야 이루어졌지만 놀랄 필요는 없다. 단 한 발의 총성도 울리지 않았고 부상자도 단 한 명도 없었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전쟁은 스페인 역사상 가장 길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기록된다. 무려 172년이나 지속되었으니 말이다. 실로 명실상부한 전쟁인 셈이다.

전쟁의 시작: 나폴레옹과 뒤틀린 동맹

모든 것은 1808년 나폴레옹이 지휘하는 프랑스군이 스페인을 침공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스페인은 프랑스와 동맹 관계였고 잉글랜드와는 적대적이었다. 그러나 사태의 전개 속에서 스페인은 입장을 바로잡아 영국과 강화를 맺게 된다. 한편 프랑스의 동맹국이었던 덴마크에는 스페인 분견대가 이미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스칸디나비아 국가가 스웨덴과 벌이는 전쟁을 지원하고 영국의 침공 가능성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동맹 관계의 재편은 스페인군에게 신속한 철수를 강요했고, 스페인군은 영국 선박의 도움을 받아 덴마크에서 탈출했다. 하지만 5,000명의 병사가 프랑스군과 덴마크군의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

이러한 사태를 계기로 1809년 11월 11일, 스페인 군사 특사가 후에스카에 도착해 왕실 칙령을 전달했다. 나폴레옹에 의해 폐위당한 국왕 페르난도 7세를 대신해 코르테스(의회)가 발행한 이 문서는 덴마크와의 모든 외교 관계를 단절할 것을 요구했다. 이 그라나다 지역 마을의 시의회는 전원회의에서 덴마크에 전쟁을 선포하기로 공식 결의했다. 결의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어디에 있든 덴마크군을 공격하고, 받은 모욕에 대한 보복을 하며, 궁정 간 상호 합의와 조약이 평화의 조건을 규정할 때까지 적대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1981년, 늦게 도착한 평화

1814년 프랑스군 철수와 함께 휴전이 이루어졌지만, 후에스카에서는 이 소식을 접하지 못한 듯싶다. 그래서 이 '분쟁'은 1981년 7월 7일까지 계속되었다. 바로 그날, 이 안달루시아 자치시 의회의 화기애애하고 우호적인 전원회의에서 상징적인 평화 조약이 서명되었다. 이 협약이 덴마크의 귀에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는 이 기묘한 적대 행위 자체를 한 번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에스카로 통하는 도로변의 안내판이 방문하는 북유럽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진정한 후에스카-덴마크 우호의 날이 되었다.

“주의! 당신이 덴마크인이라면, 지금 적지에 들어서고 있음을 기억하라. 통과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결과를 감수하기 바란다.”

마드리드 주재 덴마크 대사 모겐스 반델-페테르센(Mogens Wandel-Petersen)과 당시 후에스카 시장 호세 파블로 세라노(José Pablo Serrano)가 그라나다 최고위 민·군 당국자들의 참석 가운데 협약에 서명했다.

단 한 발의 총성도 없이 172년, 스페인 후에스카가 덴마크에 전쟁을 선포하다

평화 조약에 서명하는 대사와 시장

전쟁 이후의 여행: 거대한 삼나무와 인류의 요람

후에스카에 도착한 여행자라면 산책하며 로사(Losa) 지역에서 자라는 높이 7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세쿼이아 나무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 나무들은 독립전쟁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한 영국 장군 웰링턴이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후에스카에서 멀지 않은 오르세(Orce)에는 베타 미세나(Venta Micena) 유적이 있는데, 여기에는 유라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고생물학적 유적군 중 하나가 자리한다. 인근 발굴지에서는 서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 유해로 여겨지는 아동의 유치 화석이 발견되었으며, 그 연대는 무려 14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단 한 발의 총성도 없이 172년, 스페인 후에스카가 덴마크에 전쟁을 선포하다

Places with History의 하비에르 라모스(Javier Ramos)와의 협업으로 제작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