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암퇴지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다? 중세 유럽에서 실제로 열렸던 기이한 '동물 재판'

암퇴지 한 마리가 살인범으로 체포되다

1457년 1월 10일, 사비니(Savigny) 법원에서 기이한 재판이 집행되었습니다. 기록에는 이렇게 남아 있습니다. “최근 크리스마스 전 화요일, 현재 구금 중인 암퇴지 한 마리와 새끼 돼지 여섯 마리가 극악무도한 살인 혐의로 체포되었다. 피해자는 후안 마르틴(Juan Martín)이다…”

판사는 최종 선고를 이렇게 내렸습니다. “우리는 말하고 선언한다. 후안 마르틴을 살해한 죄로 해당 암퇴지는 몰수되어 처벌받으며, 최후의 고문을 선고받은 뒤 나무 뒷다리에 매달릴 것이다… 한편 새끼 돼지들에 대해서는, 후안 마르틴을 먹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으므로 보증을 조건으로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결국 불행한 암퇴지는 거리로 끌려 나가 형에 따라 즉시 처형되었습니다.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처형을 보기 위해 마을의 모든 돼지가 모였다고 하는데, 이것이 유사한 행위를 저지른 자들에게 기다리고 있을 처벌을 상기시키는 '본보기 집회'였는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암퇴지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다? 중세 유럽에서 실제로 열렸던 기이한  동물 재판

네 발 달린 피고인들, 정식 재판을 받다

중세부터 17세기를 훨쩍 넘길 때까지 유럽의 법정은 두 발로 걷는 범죄자뿐 아니라 네 발 달린 짐승도 심판했습니다. 소, 당나귀, 돼지, 말 등 죄를 저지른 동물들은 체포되어 수감되었고, 모든 형식을 갖춘 정식 재판을 받았으며, 필요하다면 그 비행에 대한 처벌로 공개 처형까지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들은 정식으로 소환되어 법원에 회부되었고, 직권으로 변호인이 배정되면 그 변호인은 “성실과 예의를 다해” 임무를 수행할 것을 맹세했습니다. 해임 신청, 기일 연기, 확장, 무효의 항변 등 오늘날의 합법적 도구는 빠짐없이 동원되었습니다.

쥐 떼를 변호한 변호사, 바르톨로메오 샤사네

14세기 프랑스의 젊은 변호사 바르톨로메오 샤사네(Bartolomeo Chassané)는 쥐 떼를 변호한 사건에서 첫 번째 재판을 무효로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그가 든 이유는 이러했습니다. “피고들이 적절한 시간과 형식으로 소환되지 않았다.” 쥐들은 워낙 개체 수가 많고 영토 전역에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대성당 문에 단 한 장의 소환장을 붙이는 것만으로는 청문회 소집을 알리는 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오랫동안 참아온 교구의 신부들은 다시 현장으로 나가, 설치류에게 경고가 전달될 수 있도록 절차 문서를 큰 소리로 읽어야 했습니다.

1519년의 또 다른 판결문은 수확물을 먹은 죄를 지은 시골 쥐들에게 이렇게 선고합니다. “해당 동물들이 14일이라는 연장 불가능한 기간 내에 글루른(Glurns) 마을의 들판과 초원에서 쫓겨나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도록 금한다…” 당시 생쥐 떼가 글루른(오늘날 스위스)의 농작물을 파괴하고 있었고, 농부들은 더 이상 손쓸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필사적으로 그들은 정의에 호소했고 쥐들을 고소했습니다. 공정하고 원칙적인 시 판사는 고소장을 처리하기 위해 접수하고 재판 날짜를 10월 28일로 정한 뒤 변호인까지 임명했습니다. 물론 재판은 피고인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원고의 농작물을 훼손한 혐의로 기소되었고, 증거가 제출되었으며, 검찰과 변호인의 주장이 모두 들려진 뒤 판사가 선고를 낭독했습니다.

그런데 이 판결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관용이었습니다. 당시 사법 관행에 따라 임신한 여성과 어린이에게 특정 특권이 부여되었는데, 판사는 이를 사형 선고를 받은 쥐들에게도 일정 부분 적용했습니다. 판결문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해당 동물 중 일부 암컷이 임신 중이거나 너무 어려 여행할 수 없는 경우, 향후 14일 동안 해당 동물에 대한 보호가 보장된다.” 과연 쥐들은 추방 명령에 복종했을까요? 그 답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단체 재판, '무단 구애' 고양이, 강도의 공범 개

대규모 집단 재판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1300년 잉글랜드에서는 심문 과정에서 판사가 “무죄를 호소하는 자들과 죄인의 울음소리를 구별할 수 없었다”며 까마귀 떼 전체에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누군가 덮어 씌워지는 일이 없도록 무리 전체를 비난한 조치였지만, 이 사건에서 피고인들은 끝내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메인주에서는 한 마리의 고양이가 ‘무단 구애’ 혐의로 한 달간 우리에 갇히는 벌을 받았습니다. 매우 도덕적인 주인이 기르던 귀여운 아기 고양이였습니다.

또 한 마리의 개는 가방과 음식을 훔치도록 훈련된 강도의 공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인간 강도는 도둑 혐의로 오른손을 잃었지만, 개는 “착한 성품” 덕분에 더 관대한 처우를 받았습니다. 여주인의 명령에만 복종했을 것이라고 판단한 법정은 채찍 20대라는 가벼운 형을 집행한 뒤 그를 풀어주었습니다.

특히 고양이들이 연루된 잘 알려진 주술(마녀사냥) 혐의 사건들을 제외하더라도, 동물이 기소되고 유죄 판결을 받은 사법 및 공식 사례는 수백 건에 달합니다. 그렇다면 동물들은 왜 기소되고 처벌받았을까요?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였을까요? 이 믿기 힘들 만큼 순진해 보이는 절차의 배경에는, 범죄자의 집을 파괴하거나 불태워야 했던 추악한 기억을 모두에게서 지우려는 감정과 비슷한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20세기에도 이어진 기이한 판결들

시간적으로 훨씬 가까운, 더 어처구니없는 사건도 있습니다. 런던 잡지 릴리풋(Lilliput) 1948년 6월호는 로스앤젤레스의 한 변호사가 유언장으로 1,500파운드를 물려준 두 마리의 아일랜드 세터견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3주간의 토론 끝에 판사는 행운아 견들을 법정에 소환했지만, 질문에 합리적으로 답변할 수 없다는 이유로 상속을 기각했습니다. 교수형에 처해진 코끼리 메리(Mary), 감전으로 처형된 코끼리 탑시(Topsy)의 사례 역시 잊히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를 침입한 파리에게 내린 파문 선고

그렇다면 무대가 교회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1121년, 훗날 성인으로 시성될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Bernard of Clairvaux)가 프랑스 푸아니(Foigny)에서 설교하는 동안 파리 떼가 성당에 침입해 교구민들을 괴롭혔습니다. 곤란한 상황에 마주한 그는 강단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Eas excommunico (나는 너희를 파문한다)

그리고 다음 날, 모든 파리는 죽은 듯 사라졌다고 전해집니다.

다만 의문이 남습니다. 왜 그는 교황 하드리아누스 4세를 죽인 말벌을 파문하지 않았을까요? 신성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Frederick I Barbarossa)를 상대로 교황령에 대한 주장을 내세우며 가혹한 설교를 마친 뒤, 하드리아누스 4세의 측근 일행은 기분 전환을 위해 아냐니(Agnani)에 들렀습니다. 교황은 분수대에서 물을 마시다가 불운하게도 말벌을 삼켜 목이 붓고 숨통이 막히는 바람에 질식해 죽고 말았습니다.

절도의 공범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숲

이런 어리석은 절차는 동물계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14세기 독일에서는 숲 하나가 통째로 절도의 공범으로 유죄를 선고받아, 법원 명령에 따라 벌목되고 불태워졌습니다. 한 도둑이 나무에서 나무로 옮겨 다니며 지방 당국의 추적을 피했는데, 숲은 범죄를 목격하고도 막지 못했고, 범인이 법망을 벗어나도록 도운 혐의로 기소된 것입니다. 법원은 문제의 숲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출처: 고대 이집트의 고양이부터 9/11의 개까지
삽화: 프리실라 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