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영화 '마지막 사무라이'의 실화, 프랑스 장교 쥘 브뤼네의 일본 원정기

톰 크루즈 주연,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영화 마지막 사무라이(2003)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톰 크루즈가 연기한 네이선 알그렌은 미국 육군 군인으로, 도쿠가와 막부를 종언으로 몰아넣은 격변기인 메이지 유신 시대에 일본에 도착합니다. 일본은 오랫동안 씨족과 봉건 영주(다이묘), 사무라이, 그리고 쇼군(장군)에 의해 통치되어 왔지만, 서구의 근대성과 산업화 앞에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막부 시대에도 천황이라는 존재는 있었으나 조용히 뒤로 물러난 입지였습니다. 그러다 메이지 유신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천황이 일본 정치의 무대 중심에 서게 됩니다.

영화  마지막 사무라이 의 실화, 프랑스 장교 쥘 브뤼네의 일본 원정기

사코쿠(쇄국)는 완전한 고립이 아니었다

일본이 오랫동안 세계와 단절된 것처럼 보였지만, 이른바 사코쿠(쇄국)라 불리는 이 고립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등 유럽인들과의 접촉은 이미 그보다 수십 년 전부터 선교사와 상인들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일본인들은 스페인 사람과 포르투갈 사람을 '남만(南蠻)', 즉 '남쪽에서 온 오랑캐'라고 불렀습니다.

아시아에서 벌어진 다른 사건들 역시 일본이 지도 밖의 나라가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일본의 조선 침략은 노량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앞에 끝을 맞았고, 그보다 앞선 쿠빌라이 칸의 두 차례 몽골 침입 때도 일본은 폭풍과 강풍 덕분에 구원받았습니다. '카미카제', 즉 '신풍(神風)'이라는 말이 여기서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1854년 페리 제독이 가나가와 조약에 서명하면서 일본은 본격적으로 서구에 문호를 열게 됩니다.

흥미롭게도 네이선 알그렌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은 미국인이 아니라 프랑스인 쥘 브뤼네(Jules Brunet)였습니다.

영화  마지막 사무라이 의 실화, 프랑스 장교 쥘 브뤼네의 일본 원정기

쥘 브뤼네

프랑스 장교 쥘 브뤼네

브뤼네는 1838년 프랑스 동부 벨포르에서 태어나, 1857년 파리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하고 포병을 전공했습니다. 1862년부터 1867년까지는 나폴레옹 3세 휘하에서 제2차 프랑스의 멕시코 개입에 참전해 용맹함을 인정받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습니다. 1867년, 브뤼네는 최초의 프랑스 군사고문단 일원으로 요코하마에 도착합니다. 그의 임무는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정예 부대를 훈련하고 지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브뤼네는 일본의 전통과 문화에 깊이 매료되었지만, 영화에서처럼 그 시기는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시기였습니다. 1868년 메이지 천황이 공식적으로 권력을 장악합니다. 쇼군이 600년간 쥐고 있던 권력이었습니다. 수많은 번(씨족)이 천황을 지지하고 나섰지만, 쇼군은 천황을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천황이 이끄는 개방파와 전통 수호파인 막부 진영이 맞서는 내전, 이른바 보신 전쟁이 발발합니다.

보신 전쟁과 에조 공화국

제국군(천황군)이 에도로 진군하자, 프랑스 대사 레옹 로슈가 에도 방어 계획을 세웠지만, 쇼군은 마지막 순간 이를 거두었고 그의 군대는 1868년 3월 29일 고슈-가츠누마 전투에서 패배합니다. 두 달 후 에도는 함락되었고 요시노부 역시 항복했습니다.

쇼군의 부하 중 일부, 브뤼네와 프랑스 장교 네 명은 막부에 충성하던 에노모토 다케아키 제독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해 일본 북쪽의 에조 섬(오늘날의 홋카이도)으로 피신합니다. 같은 해 9월 3일 에도는 '도쿄'로 이름을 바꾸었고, 메이지 천황은 그곳에 자리 잡으며 이후 일본의 수도로 만들었습니다. 나폴레옹 3세는 프랑스의 중립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브뤼네와 장교들은 프랑스군의 임무를 스스로 내려놓고 다케아키와 합류하기로 결심합니다. 병력을 재편성해 반격할 수 있기를 희망한 것입니다.

브뤼네의 지휘 아래 반군은 제국군이 장악하고 있던 고료카쿠 요새를 포위해 함락시켰고, 승전을 거듭하며 하코다테를 점령합니다. 그리고 1868년 12월 15일, 에노모토 다케아키를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에조 공화국이 선포됩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유럽 국가들이 이 공화국을 승인했는데, 일본 역사상 유일한 공화국이었습니다.

영화  마지막 사무라이 의 실화, 프랑스 장교 쥘 브뤼네의 일본 원정기

에조 공화국 선포

패배, 그리고 귀향

1869년 3월, 약 1만 명의 제국군이 에조에 상륙합니다. 브뤼네와 네 명의 프랑스 장교(포르탕, 마를랭, 카즈뇌브, 부피에), 그리고 약 3,000명의 공화국군은 기적에 가까운 저항을 펼치지만, 결국 압도적인 물량 우위가 열정을 눌렀고 1869년 5월 패배를 확정짓게 됩니다. 고료카쿠 요새가 함락될 당시 에조 공화국군은 겨우 800명뿐이었고, 상대는 8,000명의 제국군이었습니다. 600년 막부의 역사가 막을 내렸고, 쥘 브뤼네의 일본 원정기도 함께 끝났습니다.

프랑스로 돌아간 브뤼네는 영웅으로 환영받았지만, 중립 지시를 어긴 죄로 군법회의에 회부됩니다. 그럼에도 그는 군 경력을 이어갈 수 있었고, 마침내 장군 계급까지 올라섰습니다.

계속된 프랑스-일본 협력

브뤼네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와 일본의 협력은 메이지 유신 기간 내내 이어졌습니다. 1872년과 1884년에는 일본군 근대화를 목표로 두 차례의 추가 군사고문단이 일본에 파견되었습니다. 두 명의 프랑스 장교는 명문 도장에 입문해 일본 무술을 수련한 최초의 서양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1886년에는 엔지니어 루이 에밀 베르탱이 최초의 근대 일본 해군 건설을 맡으면서 천황의 친근한 벗이 되기도 했습니다. 1919년에는 프랑스 엔지니어들이 일본 최초의 항공 부대 창설을 지도했습니다.

오늘날 쥘 브뤼네의 이름은 프랑스에서는 거의 잊혀졌지만, 일본인들은 여전히 마지막 사무라이들과 함께 싸웠던 그 프랑스 군인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페드로 산마르틴 협력
출처 및 이미지: 『일본 소사(A Brief History of Japan)』 – 미키소 하네, 보신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