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하나에 1달러, 금보다 급했던 먹거리 전쟁
1848년 캘리포니아 콜로마에서 금덩어리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들불처럼 미국 전역은 물론 대양 건너까지 퍼져나갔습니다. 육로로 캐러밴을 이루고, 바다로는 배를 타고 온 사람들까지 — 당시 미국 서부 해안에는 무려 약 30만 명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들이 몰려든 것으로 추산됩니다. 한적한 마을이던 샌프란시스코는 어느새 캘리포니아 경제 활동의 중심지로 급성장했습니다.
그러나 호황의 그림자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랐습니다. 인구가 폭증하자 가축 목장과 소규모 농장이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지 못했고, 특히 식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심했던 것이 바로 계란으로, 알 한 개의 값이 무려 1달러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공급을 늘릴 대안을 찾아야 했고, 그 해답은 의외로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바로 샌프란시스코 연안에서 약 43km 떨어진 태평양 한가운데 자리한 작은 섬들, 파랄론 제도(Farallon Islands)였습니다.

'죽은 자의 섬'이라 불린 파랄론 제도
이 섬에 최초로 상륙한 유럽인은 스페인 탐험가 후안 로드리게스 카브릴로(Juan Rodríguez Cabrillo)였습니다. 그는 절벽이 해안선 근처 바다 위로 솟아오른 바위를 뜻하는 '파랄로네스(Farallones)'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험준한 지형과 영구 정착이 어렵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담은 명명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지역 원주민들은 이곳을 '죽은 자의 섬'이라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바로 이런 조건 덕분에 파랄론 제도는 물개와 코끼리물범, 백상아리, 그리고 태평양 연안에서 가장 큰 바닷새 번식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의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날아다니는 펭귄'이라고도 불리는 바다오리(Common Murre)로, 북대서양과 태평양의 바위 해안에 둥지를 트는 새입니다. 새가 많다는 것은 당연히 알도 많다는 뜻, 그리고 곧 큰돈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파랄론 제도의 바다오리 번식지
파랄론 에그 컴퍼니의 탄생
16세기 이래로 선박들이 물개 가죽을 얻으려 이 섬을 찾았다면, 1849년에는 로빈슨(Robinson)과 그의 소규모 승무원이 '수확' 대상을 바다오리 알로 삼아 파랄론 제도로 향했습니다. 얼룩덜룩하고 뾰족한 모양에 암탉 알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크기 덕분에 이 알들은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수익성을 확인한 로빈슨은 파랄론 에그 컴퍼니(Farallon Egg Company), 이른바 '에그 컴퍼니(Egg Company)'를 설립하고 스스로 섬의 소유권을 선언했습니다. 회사 직원들은 매년 5월 중순부터 7월까지 섬에서 알을 채집했습니다. 그들은 주머니가 많은 아주 넓은 셔츠를 입고 가파르고 험난한 절벽을 오르내리며 둥지에서 알을 담았고, 이를 샌프란시스코에서 값 좋게 팔았습니다. 한 시즌에 채집되는 알은 평균 50만 개에 달했는데, 평소 딱 한 개의 알만 낳는 새 입장에서는 충격적이고도 치명적인 숫자였습니다.
무력 충돌, '계란 전쟁'의 발발
사업이 워낙 수익성이 좋다 보니 경쟁자가 없을 리 만무했습니다. 로빈슨은 잠재적 라이벌의 접근을 막기 위해 배를 봉쇄하고 무장한 인원을 섬에 배치했으며, 회사 소속으로 보너스를 받거나 직접 소비할 목적으로 알을 채집하는 노동자들만을 허용했습니다. 애초에 접근하기 어려운 절벽 위에 위치한 탓에 적발될 위험 자체도 낮았습니다.
그러나 1863년, 미국인 데이비드 배첼더(David Batchelder)가 이끄는 이탈리아인 그룹이 이 독점 사업에 끼어들기 위해 섬으로 향했습니다. 첫 시도는 회사 측 요원들에게 격퇴당했지만, 며칠 후 그들은 무장을 갖추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양측은 몇 차례 총격전을 벌였고, 양쪽에서 각각 한 명씩 사망자가 발생한 뒤 배철더와 그의 일행은 도주했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계란 전쟁(Egg War)으로 불리는 사건입니다. 그 결과 파랄론 제도에 대한 단독 통제권은 로빈슨의 회사에 남았고, 배철더는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주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1,400만 개의 알, 그리고 긴 회복의 시간
1881년 미국 정부는 파랄론 제도에서의 알 채집을 공식적으로 금지했지만, 샌프란시스코의 어부들은 이 관행을 버리지 않고 20세기까지 몰래 알을 채집했습니다. 1850년부터 1881년까지 에그 컴퍼니가 판매한 바다오리 알은 약 1,400만 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금지 조치가 내려진 지 100여 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바다오리 개체수는 겨우 회복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