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월스트리트의 어두운 기원: 뉴욕 최초의 노예 시장에서 세계 금융 중심지까지

1926년 9월 25일, 국제 연맹 주도로 노예제도 폐지에 관한 국제협약이 체결되며 노예제는 공식적으로 불법으로 선언되었습니다. 이후 1956년 9월 7일에는 아동 착취, 채무 속박 등 노예제와 유사한 관행까지 금지 범위를 확대하는 보충 협약이 채택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제력이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오늘날, "손에 채찍을 든 주인"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있다면 바로 월스트리트입니다. 삶의 아이러니란, 세계 금융의 심장부인 이곳이 바로 아프리카 노예들의 손으로 건설된 뉴욕 최초의 노예 시장 자리라는 사실입니다.

월스트리트의 어두운 기원: 뉴욕 최초의 노예 시장에서 세계 금융 중심지까지

방벽에서 이름을 딴 거리, 월스트리트

1625년 네덜란드 서인도 회사는 허드슨 강 유역에 뉴암스테르담(오늘날의 뉴욕)을 설립했습니다. 강 건너 모피 무역을 장악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1653년 네덜란드 정착민들은 아메리카 원주민과 영국인의 공격에 대비해 뉴암스테르담 북쪽 가장자리에 나무와 진흙으로 방벽을 쌓았는데, 실제로 이 공사를 수행한 사람들은 1627년 식민지로 끌려온 아프리카 노예들이었습니다. 훗날 영국인들이 이 방벽을 철거했지만, 월스트리트(Wall Street)라는 이름은 지금도 그 벽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노예들은 방벽만 쌓은 것이 아니라 숲을 개간하고 도로, 방앗간, 다리, 주택, 부두, 감옥, 네덜란드 교회, 그리고 이후에는 영국 교회까지 도시의 기반 시설 대부분을 건설했습니다.

월스트리트의 어두운 기원: 뉴욕 최초의 노예 시장에서 세계 금융 중심지까지

1711년, 월스트리트에 문을 연 뉴욕 최초의 노예 시장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초, 이미 영국령이 된 이 도시는 잉글랜드 왕이자 요크 공작 제임스 2세(Jacobo II)를 기려 '뉴욕'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노예 노동에 기반한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더 큰 이익을 노린 영국인들은 노예 무역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1711년 뉴욕 시의회는 바로 그 월스트리트에 도시 최초의 노예 시장 설립을 공식 승인했습니다.

'밀 마켓(Meal Market)'으로 불린 이 시장은 곡물과 고기도 함께 판매되었기에 '식품 시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지만, 대서양 횡단 노예 무역의 핵심 거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뉴욕 인구의 20% 이상이 노예였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합니다.

월스트리트의 어두운 기원: 뉴욕 최초의 노예 시장에서 세계 금융 중심지까지

버튼우드 협약과 증권거래소의 탄생

특히 목화 농장용 노동력으로 판매될 노예들을 실은 노예선들이 뉴욕 항에 도착했고, 목화 역시 이곳에서 분배되었습니다. 논리적으로 선박 보험사, 항해 자금을 조달한 대상인과 은행, 농장 지주들은 '투자에 가까운'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792년 5월 17일, 월스트리트 68번지의 버튼우드(buttonwood) 나무, 즉 맹그로브 사라고사(mangle button) 아래에서 24명의 증권 중개인과 도시 상인들이 하나의 계약에 서명했습니다. 이른바 버튼우드 협약으로, 오늘날 뉴욕 증권거래소(NYSE)의 씨앗이 된 순간입니다.

더 나아가 오늘날 월스트리트에 상장된 일부 은행과 보험 회사들—Aetna 보험, J.P. Morgan, Lehman Brothers, Bank of America, Wachovia Bank, Royal Bank of Scotland 등—은 과거 노예 무역 관련 거래와 투자에 깊숙이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세기 동안 얼마나 작은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