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트라팔가르에서 명예를 회복하려던 평범한 제독, 빌뇌브의 비극

세르반테스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재산을 잃는 자는 많은 것을 잃고, 친구를 잃는 자는 더 많은 것을 잃지만, 용기를 잃는 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

이 말은 나폴레옹 전쟁 시기 프랑스 함대의 부제독 피에르 샤를 실베스트르 드 빌뇌브(Pierre-Charles Villeneuve)에게 닿지 않았거나, 닿았더라도 그의 마음을 울리지 못했다. 그는 영국 함대 앞에서 거듭 도망쳤고, 끝내 지중해에서 영국과 맞서기로 결심했을 때는 모두가 그를 반대했다. 가련하게도, 그는 우리에게 아무런 가치도 남기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트라팔가르에서 명예를 회복하려던 평범한 제독, 빌뇌브의 비극
피에르 샤를 실베스트르 드 빌뇌브

나폴레옹의 야심 찬 계획과 빌뇌브의 임무

18세기 말,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의 루시용 전쟁이 끝난 후 바젤 조약과 산 일데폰소 조약, 아란후에스 조약이 체결되면서 두 나라는 영국에 맞서 동맹을 맺게 되었다. 스페인은 지브롤터 탈환을, 프랑스는 카리브해 식민지에서 영국을 몰아내고 더 나아가 영국 본토 침공을 노렸다.

이를 위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자신이 보기엔 완벽해 보이는 전략을 구상했다:

"자, 빌뇌브. 툴롱에서 카리브해로 출항해 영국 함대를 유인해. 그러고 나서 되돌아와 우리 대군과 함께 스코틀랜드에 상륙해 영국을 점령하는 거야. 가는 길에 카르타헤나에서 스페인 함대도 합류시키고. 마르티니크에 도착하면 카리브해 임무도 잊지 말고."

물론 실제 전달된 메시지는 이보다 더 공식적이었겠지만, 목표는 명확했다: 카리브해로 향하는 척하며 영국 함대를 유인해 도버 해협을 비운 뒤, 영국 본토에 상륙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넬슨 공포증"이라 불릴 만큼 호레이쇼 넬슨을 두려워하던 불안한 성격의 빌뇌브는 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스페인 카르타헤나 항에서 연합 함대와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지브롤터에 주둔한 영국 함대를 피하려 너무 빨리 지나치는 바람에 스페인 함대는 해협에 다다라서야 겨우 그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카리브해, 마르티니크에 도착한 빌뇌브는 나폴레옹이 맡긴 임무를 제쳐두고 섬에 두 달이나 머물렀다. 프랑스 함대의 낙원 같은 체류를 끝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렇다, 호레이쇼 넬슨 제독이 가까이 왔다는 소문이었다.

트라팔가르에서 명예를 회복하려던 평범한 제독, 빌뇌브의 비극
호레이쇼 넬슨 제독

넬슨에 대한 트라우마의 기원

빌뇌브가 넬슨을 이토록 두려워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당시 넬슨은 나일 해전(Battle of the Nile)에서 프랑스 함대의 상당 부분을 격파했는데, 당시 빌뇌브는 이미 지휘관 중 한 명으로 참전해 그 참패를 직접 목격했던 것이다.

페롤 해전과 나폴레옹의 분노

연합 함대는 유럽으로, 구체적으로 페롤 항으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페롤에는 이미 영국 소함대가 기다리고 있었고, 1805년 7월 전투가 벌어졌다. 시야 불량으로 혼란이 극심해지자 영국 해군은 조건이 좋아질 때까지 전투를 미뤘다. 빌뇌브는 망설이지 않고 안전한 항구인 카디스로 도망쳤다.

나폴레옹은 부제독의 행보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분노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혹평했다:

"그는 프리깃함 한 척 지휘할 성격적 힘도 없다. 결단력도, 도덕적 용기도 결여되어 있다."

사실 빌뇌브는 맡겨진 목표 중 단 하나도 달성하지 못했다. 카리브해 양동 작전은 허사로 끝났고, 영국 본토 상륙 계획도 무산됐다. 피니스테레 해전 이후 비스케이만으로 돌아가 프랑스로 향하는 것조차 그는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결국 나폴레옹은 그의 해임을 명령했다.

명예 회복을 위한 마지막 도박, 트라팔가르

카디스에 머무르던 빌뇌브는 자신의 해임 소문이 돌자, 지중해에서 영국 함대와 결전함으로써 명예와 직위를 지키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는 연합 함대의 스페인 측 지휘관 페데리코 그라비나(Federico Gravina)에게 이 계획을 말했으나, 그라비나는 그가 미쳤다고 일축했다. 기상 악화, 겨울의 도래, 카디스 항의 천연 요새화 등 모든 조건이 출항에 불리했기 때문이다. 빌뇌브는 이를 스페인 측의 명예심 부족 탓으로 돌렸다.

"기압계가 악천후를 예고하는 게 안 보이나? 수은주가 내려가는 게 안 보이냔 말이야?"
빌뇌브가 차갑게 대꾸했다: "여기서 내려가는 건 용기요."
이 모욕에 그라비나는 분노해 벌떡 일어나 빌뇌브의 피니스테레 곶에서의 비겁한 행태를 비난했다. 격한 말들이 오간 끝에 빌뇌브는 외쳤다: "내일 출항한다!"

— 베니토 페레스 갈도스, 『국민적 에피소드: 트라팔가르』
트라팔가르에서 명예를 회복하려던 평범한 제독, 빌뇌브의 비극
「트라팔가르 해전」 (1836) – 클락슨 스탠필드

예정된 비극, 트라팔가르 해전

연합 함대 33척은 이틀에 걸쳐 카디스 항을 빠져나가 전열을 갖췄다. 하지만 영국 함대는 그들에 수직으로 접근해 왔고, 이는 빌뇌브를 완전히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는 또 하나의 치명적 결정을 내린다: 선회해 카디스로 돌아간 것이다. 승리가 이미 불가능에 가까웠다면, 이 결정은 사실상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빌뇌브는 넬슨이 자신의 기함 뷔상퇴르(Bucentaure)의 취약한 선미를 노리고 돌진하는 것을 목격했다. 다행히(?) 프랑스 수병들이 넬슨을 저격해 치명상을 입혔지만, 전세의 흐름은 이미 기울어진 뒤였다.

이후의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대규모 인명 피해, 수많은 난파선, 스페인의 해군적 치욕, 한 마리 영웅적 돼지, 영국에겐 신화가 된 넬슨, 그리고 "용서받은" 프랑스 부제독의 의문스러운 최후—여섯 군데 찔린 자국으로 발견된 시신, 소문엔 나폴레옹의 지시였다고 한다.

만약 빌뇌브가 남쪽으로 향하지 않고 비스케이만으로 계속 나아갔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글: 마르타 로드리게스 쿠에르보(Marta Rodríguez Cuervo) (Martonimos)

참고 문헌: 베니토 페레스 갈도스 『트라팔가르』, 『성삼위일체』, 마누엘 P. 비야토로 "트라팔가르에서 영국 함선 7척과 맞선 스페인 거함의 학살" (ABC Historia), 호세 카를로스 G. & 크리스탄토 L. 팟캐스트 "북소리의 기억: 트라팔가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