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선한 마그누스(Magnus the Good), 노르웨이 출신의 덴마크 왕(1042~1047)

중세 북유럽 삼국인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의 역사는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습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덴마크의 국왕이 스웨덴, 그리고 무엇보다 노르웨이의 왕위까지 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선한 마그누스(Magnus the Good)'의 경우는 독특합니다. 그는 노르웨이 사람으로서는 유일하게 덴마크 왕위에 오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노브고로드에서 자란 왕자

1024년에 태어난 마그누스는 노르웨이 국왕 '성왕(聖王) 올라프 2세(Olav II the Saint)'와 정부 알브힐드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였습니다. 1028년 아버지가 러시아에 정착한 바이킹 집단에게 의탁하며 노르웨이에서 추방되자, 마그누스는 노브고로드 공작의 보호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1034년, 국왕 스베인의 통치에 반대하던 노르웨이 귀족들은 마그누스를 귀국시켜 반란을 일으키고 왕위를 되찾아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덴마크와의 운명적 협약

운명은 그들의 편에 기울었습니다. 곧 스베인 국왕이 사망하면서 마그누스가 노르웨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스베인의 이복형제가 노르웨이 왕위를 주장하며 나섰는데, 그가 바로 덴마크 국왕 하르트크누트(Hardknut)였습니다. 잉글랜드 왕위 요구자이자 '대왕 크누트(Knut the Great)'의 아들이기도 했던 그입니다.

마그누스가 노르웨이 왕위를 지키느냐, 하르트크누트가 노르웨이를 자신의 영토에 추가하느냐를 두고 양국 간의 전쟁은 불가피해 보였습니다. 사료들은 이후 벌어진 일이 두 왕의 직접 회담의 결과인지, 아니면 양국 간의 피비린내 나는 충돌을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막고자 했던 양국 귀족들 간의 합의 결과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느 쪽이든 전쟁은 하나의 타협으로 피할 수 있었습니다. 즉, 각 왕이 자국을 다스리고(하르트크누트는 덴마크, 마그누스는 노르웨이), 두 군주 중 먼저 죽는 이의 왕국을 살아남은 이가 상속하여 덴마크와 노르웨이 모두를 통치하기로 한 것입니다.

덴마크 왕으로서의 시련

운명처럼도 하르트크누트가 1042년에 먼저 세상을 떠났고, 마그누스는 덴마크 국왕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고국 노르웨이에서든 덴마크 땅에서든 결코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덴마크에서 그는 유틀란드 남부에 정착한 슬라브계 민족인 '벤드(Wends)'와의 치열한 전쟁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덴마크인들이 마그누스를 왕으로 받아들인 진짜 이유는 벤드 원정에 노르웨이의 지원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는 추측도 있습니다. 마그누스는 덴마크·노르웨이 연합군을 이끌고 리르스코우 전투(Battle of Lyrskou, 현재 독일 슐레스비히 지역)에서 슬라브군을 대파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최소 1만 5천 명의 벤드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이 승리에도 불구하고 마그누스는 재위 내내 덴마크 귀족들의 반란과 씨름해야 했으며, 특히 하르트크누트의 사촌 스베인 에스트리센(Svend Estridsen)이 이끄는 반란이 거셌습니다. 잉글랜드 왕위 획득에 실패한 스베인은 덴마크로 건너왔고, 마그누스는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를 유틀란드 백작으로 임명했습니다.

노르웨이에서도 그의 통치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국토 동부 대부분이 그에게 반기를 들었는데, 반군을 이끈 이는 아버지의 동생, 즉 마그누스의 숙부인 하랄 하르드라다(Harald Hardradda)였습니다. 하랄은 당대 가장 유명한 무인으로, 스칸디나비아부터 콘스탄티노플, 러시아,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당대에 알려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싸워 명성을 쌓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훗날 1066년 스탬포드브리지 전투에서 잉글랜드 왕위를 노리다가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23세의 갑작스러운 죽음

1047년, 하랄과 마그누스는 서로의 갈등을 종식하고, 덴마크에서 스베인 에스트리센의 반란을 끝내며 난폭한 덴마크인들을 노르웨이의 지배 아래 두기 위한 공동 작전을 개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25일, 마그누스는 겨우 2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부 사료는 말에서 떨어져 사망했다고 전하고, 다른 사료는 배에 오르다 몸을 잘못 디뎌 바다에 빠져 익사했다고 기록합니다.

어느 쪽이든 그의 죽음과 함께 덴마크 왕위는 적수였던 스베인 에스트리센의 손에 넘어갔고, 노르웨이 왕위는 숙부 하랄 하르드라다가 물려받았습니다. 두 나라의 운명은 이렇게 갈라졌지만, 이것이 마지막으로 두 나라가 함께한 순간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1세와 칼마르 동맹 아래에서 두 나라는 다시 하나로 뭉치게 되니…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참고 자료

Henning Dehn-Nielsen, Kings and Queens of Denmark
Palle Lauring, A History of Denmark

이미지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