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1년 4월 14일, 독일군은 메탁사스 방선에서 그리스군의 영웅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북마케도니아를 점령했습니다. 독일군은 중앙마케도니아에서 그리스-영국 연합군을 압도했고, 북에피루스에서 승전 중이던 그리스군은 포위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 정부는 뒤늦게 그리스-알바니아 국경 방면으로 병력을 철수시키라는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데메스티카스(Demestichas) 중장이 지휘하는 제1군단은 서쪽부터 동쪽 순으로 제3, 제8, 제2 보병사단을 배치해 전선 서부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군의 철수 기동을 지켜본 이탈리아군은 제1군단 전체 전선을 따라 마지막 대공세를 개시했습니다.
이탈리아군은 주력을 카치미트로스(Charalambos Katsimitros) 중장이 지휘하는 제8보병사단이 방어하던 제1군단 중앙에 집중했습니다. 제2사단 구역에서는 4월 14일 이탈리아군의 공격이 막대한 손실을 입고 격퇴되었으며, 사실상 재차 시도되지 않았습니다. 제3사단(서부·해안) 구역에서는 치마라(Chimara) 일대에서 강도 높은 공격이 있었으나 역시 격퇴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탈리아군은 공세의 무게중심을 제8사단에 실었습니다.
제8사단, 싸우고 승리하다
4월 14일 오전 7시 30분, 제8사단의 전선은 이탈리아군의 포격에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군은 제1선뿐만 아니라 사단의 제2진지, 예비대와 포병 진지까지 함께 타격했습니다. 끔찍한 강도의 화력 준비는 오전 9시 15분까지 계속되었고, 이어서 이탈리아 보병이 쇄도해 나왔습니다. 만약 제8사단의 전선이 분단된다면, 이탈리아군은 제3사단을 쉽게 포위할 수 있었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며 제2사단과 제2군단 병력을 측면에서 타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탈리아군은 특히 제8사단 동부 구역인 말리 스파트(Mali Spat)에 맹렬히 공격해 왔습니다. 이곳은 '무덤가' 구역이라 불렸는데, 1월부터 3월까지 혹독한 기후 조건 속에서 사단이 피와 굶주림, 죽음의 대가를 치른 비참한 현장이었기 때문입니다.
대규모로 밀려온 이탈리아군은 일부 지점에서 그리스 부대를 밀어내며 진지에 발판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해당 구역 예비대의 즉각적인 역습이 상황을 안정시키고 이탈리아군의 성과를 최소한으로 제한했습니다. 한편 사단 서부 구역에서는 이탈리아군의 공격이 완전히 격퇴되었습니다.
이탈리아군은 말리 스파트에서 확보한 돌파구를 넓히려는 시도를 거듭했지만, 카치미트로스 중장이 제85보병연대 소속 두 개 대대로 해당 구역을 증강하면서 기세와 막대한 사상자에도 불구하고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오후에는 이탈리아군이 운을 다시 시험하며 니비차(Nivitsis) 서부 구역을 노렸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을 방어하던 제15연대가 이들을 격퇴했습니다. 하루 종일 그리스 포병은 기적 같은 활약을 펼치며 이탈리아군이 갓 확보한 교두보를 확장하지 못하도록 막아섰습니다.
밤이 깔리자 이탈리아군의 공격은 멈췄습니다. 그러나 4월 15일 새벽, 같은 맹렬함으로 공격이 재개되었습니다. 카치미트로스 중장은 제1군단 예비대였던 제34연대를 배속받아 말리 스파트 구역을 증강했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제85연대는 전투에서 물러났습니다.
이탈리아군의 공격은 조금의 성과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제34연대장 알렉산드로스 치구니스(Alexandros Tsigounis) 대령 휘하의 병사들이 이들을 완벽히 저지했습니다. 하루 종일 말리 스파트의 그리스 진지를 돌파하는 데 실패하고 막대한 손실을 입은 이탈리아군은 4월 16일 아침 서부 구역에서 다시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포병의 근접 지원을 받으며 필사적으로 밀어붙인 이탈리아군은 그리스군의 전위 진지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은 잠시뿐이었습니다. 창검을 든 두 개 소대 규모('울라마')의 그리스 보병 역습이 이들을 완전히 몰아냈습니다. 단 한 뼘의 땅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설령 제8사단이 후퇴한다 해도, 이탈리아군은 결코 통과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