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알렉산더 대왕과 마케도니아 제국의 지배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암살된 뒤, 알렉산드로스 3세(알렉산더 대왕)는 왕位에 올랐고, 페르시아 제국을 격파하며 고대 최대급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과 마케도니아 제국의 지배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36년부터 마케도니아의 왕으로서, 즉위 후 약 12년 만에 거대한 제국을 세운 인물입니다. 아버지의 암살 이후 그는 아시아 정복에 나서, 다리우스 3세가 통치하던 쇠퇴기의 페르시아 제국과 맞서야 했습니다. 마케도니아 제국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그리스 문화의 동방 전파였습니다.

알렉산더의 즉위

그리스 북부에 거주하던 마케도니아인들은, 선(先)호메로스 시대에 이 지역에 정착한 마지막 헬레네 집단의 후손으로 여겨집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그리스 문화권에 속한 '헬레니즘화된 민족'이라 생각했지만, 정작 그리스인들에게는 경멸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마케도니아는 기원전 7세기부터 반유목 생활을 벗어나 중앙집권적 권력을 확립해 나갔습니다.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 등 연이은 분쟁으로 그리스가 약화되자, 마케도니아는 지역 강대국으로 부상했습니다.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전역을 지배하게 된 계기는 카이로네이아 전투(기원전 338년)였습니다. 필리포스 2세가 이끄는 마케도니아군이 그리스 도시 연합군을 격파한 것입니다. 그러나 필리포스 2세의 통치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기원전 336년, 그는 자신의 호위병 중 하나였던 파우사니아스에게 암살당합니다.

역사학자들은 파우사니아스의 정확한 동기를 알지 못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개인적 불화였다는 설, 혹은 필리포스와 후계자 알렉산더를 함께 제거하려던 음모의 일환이라는 설 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필리포스 2세가 사망하자 알렉산더는 기원전 336년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필리포스의 죽음은 마케도니아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왕좌를 노리는 음모, 외세의 공격, 그리스 도시들의 반란이 잇달아 일어났습니다. 알렉산더는 결단력 있게 대응해 음모자들을 처형하고 외세의 침공을 막아냈으며, 반란을 일으킨 그리스 도시들을 격파하고 응징함으로써 모든 장애물을 극복했습니다.

페르시아 원정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내부에서 권력을 공고히 한 뒤,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제국 정복 원정에 나섰습니다. 그는 약 5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소아시아(오늘날 터키)로 진군했고, 이 지역에서 원정의 첫 국면이 시작되었습니다. 기원전 334년 그라니코스 전투에서 마케도니아군은 중요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 덕분에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있던 이오니아 지역의 그리스 도시들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가 클로드 모세(Claude Mossé)에 따르면, 마케도니아 왕은 이 지역의 그리스 도시들을 민주적인 폴리스로 전환하고, 페르시아에 바치던 공납 징수를 폐지했다고 합니다|1|.

이어서 알렉산더는 페니키아 도시들이 위치한 레반트 지역을 정복했습니다. 기원전 333년 이소스 전투에서의 승리는 페르시아 군대를 이 지역에서 몰아내는 결정타가 되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다리우스 3세는 가족마저 버려둔 채 필사적으로 도피했다고 합니다.

이소스의 승리 이후 해당 지역의 모든 도시가 마케도니아의 지배에 복속했지만, 티로스(티레)만은 저항을 이어갔습니다. 알렉산더는 8개월간의 포위전 끝에야 이 도시를 함락시켰고, 정복 직후 수천 명의 현지 주민들을 노예로 팔도록 명령했습니다.

레바논 전역과 시리아·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일부를 정복한 알렉산더는 이집트로 진격해 1년간 머물렀습니다. 이 시기의 백미는 기원전 331년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한 것입니다. 이 도시는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수행했으며, 훗날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멸망

이집트 체류를 마친 알렉산더는 본래의 목표인 다리우스 3세 격파와 페르시아 제국 정복을 위해 다시 진군했습니다. 페르시아군과의 결정적 전투는 기원전 331년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벌어졌습니다. 이 승리는 다리우스 3세의 페르시아 제국 통치에 종언을 고했습니다.

이 승리로 알렉산더는 바빌론, 수사, 페르세폴리스 등 이 지역의 주요 도시들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했고, 페르시아 왕실 금고에 있던 막대한 황금을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도피하던 다리우스 3세는 배신적인 총독(사트라프) 베소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알렉산더는 이후 베소스와 또 다른 배신자 에피스타메네스를 차례로 격파하며, 페르시아 제국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다졌습니다.

인도 원정과 알렉산더의 죽음

페르시아 제국의 반란 지역들을 진정시킨 알렉산더는 인도 정복 원정을 준비했습니다. 이 원정에서 마케도니아군은 강한 저항에 직면했으며, 파우라바(Paurava)의 왕 포로스와의 히다스페스 전투에서 격전을 벌였습니다. 인도 원정의 극심한 어려움 끝에 알렉산더는 후퇴를 결정하고 바빌론으로 돌아왔습니다.

바빌론 체류 중 알렉산더는 연회 이후 병을 얻었고, 열하루 뒤 고열로 사망했습니다. 역사학자들도 그의 죽음 원인을 확실히 알지 못하지만, 독살, 말라리아, 장티푸스라는 세 가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알렉산더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아라비아 반도 침공 계획을 중단시켰고, 마케도니아 제국은 주요 장군들 사이에서 분할되었습니다. 이 제국이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바로 그리스 문화의 동방 전파였습니다.

|1| MOSSÉ, Claude. Alexander, the Great. São Paulo: Estação Liberdade. 2004, p. 29.

*이미지 출처: Mounatinpix 및 Shutterst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