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의 도편추방제(오스트라키스모스)는 민주적 질서에 어떤 식으로든 위협이 될 수 있는 시민을 도시 국가에서 추방하거나 유배하기 위해 고안된 정치 장치였습니다.

글 · Cláudio Fernandes
폴리스마다 달랐던 그리스의 정치 체제
고대 그리스 문명의 역사를 연구할 때에는 각 폴리스(도시 국가)가 지닌 고유한 정치 모델을 혼동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수많은 도시 국가들이 모여 오늘날 우리가 '고대 그리스'라고 부르는 세계를 이루었지만, 그중 하나하나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스파르타의 양두정(두 왕이 함께 다스리는 체제)은 결코 아테네의 민주주의와 섞어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테네 민주주의를 논할 때 가장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가 바로 도편추방제입니다.
'자유인'만 누릴 수 있었던 아테네의 민주주의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현대 서구 사회의 민주주의와 달리 '자유인', 즉 폴리스(polís)의 공적인 삶에 참여할 자격을 지닌 남성 시민에게만 열려 있었습니다. 오늘날 '정치(politics)'라는 용어가 바로 이 폴리스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테네에서 민주주의 운영 규칙은 어떤 일이 있어도 기존 체제, 특히 아고라(Agora)에 모여 도시의 정치적 방향을 결정하던 시민 총회를 반드시 보전한다는 원칙에 따랐습니다.
도편추방제는 어떻게 진행되었나?
아테네 시민들은 민주적 질서가 위협받고 있다고 판단하면 이를 지키기 위한 여러 장치를 동원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도편추방제로, 사회의 일원(보통 정치가나 군 지도자)을 추방 또는 유배하는 제도였습니다. 매년 시민들은 아고라에 모여 누구를 추방할지 결정했습니다.
표결은 후보자의 이름을 오스트라콘(ostrakon), 곧 도자기 조각에 적어 진행되었습니다(본문 상단 이미지 참조). '도편추방제'라는 명칭 역시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이 추방되었으며, 추방 대상은 대개 참주(僭主)가 될 우려가 있다거나 참정에 대한 야심이 있다고 의심된 인물들이었습니다.
추방당한 유명 인사들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관련된 인물 가운데는 장군 테미스토클레스와 투키디데스처럼 도편추방을 당한 저명 인사들이 있습니다. 다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저자로 유명한 역사가 투키디데스와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는데, 실제로 추방된 것은 같은 이름을 지닌 보수파 정치가 투키디데스(멜레시아스의 아들)였습니다.
흥미롭게도 아테네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페리클레스조차 추방 표결에서 여러 차례 상당한 표를 받았지만, 실제로 추방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또한 추방된 사람들에게는 사면(amnesty)이라는 통로가 열려 있어 도시 국가로 돌아올 수도 있었습니다. 기원전 404년 투키디데스가 이러한 사면을 통해 아테네로 복귀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부패 혐의로 추방 위기에 몰린 이들: 페이디아스와 소크라테스
도편추방제는 공금 횡령이나 품행 문제 등 부패 혐의가 있는 인물에게도 적용될 수 있었습니다. 조각가 페이디아스는 아테네의 건축 사업에 쓰이기로 되어 있던 금 일부를 횡령했다는 혐의를 받았고,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적 방법을 배우던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고발당했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아테네를 떠나는 길 대신, 널리 알려져 있듯이 독배(헤모크)를 마시는 사형을 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