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마디그라·카니발의 유래와 역사: 사순절 앞 축제 뒤에 숨겨진 이야기

마디그라·카니발의 유래와 역사: 사순절 앞 축제 뒤에 숨겨진 이야기

카니발(Carnival), 파싱(Fasching), 알레만식 파스트나흐트(Fastnacht)… 부르는 이름은 달라도 본질은 같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이 축제 자체가 별로입니다. 우스꽝스러운 분장, 시끄러운 행렬, 몇 시간째 반복되는 단조로운 음악까지—팝 음악에 상당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 믿음직스럽게 들리실 겁니다. 게다가 오스트리아 카니발의 본거지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더더욱 '다섯 번째 계절'이 다가오기만 해도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카니발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저조차 매혹적입니다. 크리스마스 같은 다른 명절과 마찬가지로, 이 축제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카니발의 기원은 정말 기독교일까요, 아니면 그보다 훨씬 오래된 이교(異敎) 시대일까요? 대체 누가, 어떻게 이런 축제를 만들어냈을까요?

카니발을 축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언제부터?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오늘날 꽤 명확해 보입니다. 카니발이든 파싱이든(표현이 헷갈리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 이 관습에는 분명히 기독교적 배경이 있습니다. 축제가 보통 2월에 열린다는 점이 결정적 힌트인데, 바로 기독교 사순절(四旬節)이 시작되기 직전이기 때문입니다. 향후 40일간 모든 즐거움을 절제해야 하니, 그 전에 실컷 먹고 마시고 즐기자는 것이지요. 간접적으로 카니발은 기독교 최대의 축제인 부활절과 연결됩니다. 사순절은 곧 부활절로 향하는 길목이니까요.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특히 남부 독일과 스위스의 전통적인 파스트나흐트의 많은 관습과 의례는 훨씬 오래된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대로부터 거의 모든 사회에는 겨울을 내쫓는 의식이 있었고, 그 시기가 하필 2월—곧 카니발 기간—과 겹쳤습니다. 소음, 가면, 덜거덕거리는 소음 도구가 지금도 겨울의 악령을 쫓는 장치로 남아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결국 오늘날의 카니발은 이교(前기독교) 풍습과 기독교 전통이 결합해 탄생한 혼합물입니다. 인류가 술 마시며 노는 잔치를 거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새로운 중세 카니발

오늘날 우리가 아는 카니발의 형태는 중세 전성기에 자리 잡았습니다. 사순절 전 축제 기간은 12~13세기 무렵 확립되었고, 놀랍게도 교회조차 이를 용인했습니다.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로 이어지는 방탕한 밤은 '악마의 통치 아래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교훈으로 여겨졌고, 그 뒤를 따르는 질서 있는 금식이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다시 인도할 것이라 믿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바보들의 자유'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카니발 기간 동안 사람들은 평소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국을 조롱하고, 심지어 어리석은 주교나 교황에게 왕관을 씌우기도 했지요. 물론 대가는 있었습니다. 참회 월요일이 지나고 재의 수요일이 되면, 교회와 국가의 눈앞에서 모든 짓을 '참회'로 청산해야 했습니다.

중세의 카니발은 이렇게 시작되었지만, 오늘날의 축제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면 귀족들이 이 전통을 이어받습니다. 서민들의 폭도 같은 행렬 대신, 법정(宮廷) 축제가 점점 주류가 되었습니다. 이미 베니스에서 확립된 우아한 귀족식 카니발이 유럽 전역—독일을 포함해—의 모범이 된 것입니다. 한편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지역에서는 축제가 위축되었습니다. 사순절 금식 자체가 사라졌고, '열심히 일하는 개신교 신자에게 유흥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지배했던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거리의 농부와 시민이 벌이던 소박한 축제는 현대로 오면서 줄어들고, 사브셔타이드(Shrovetide)는 점차 엘리트의 전유물이 되어갔습니다.

카니발과 마디그라의 부활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그럼 오늘날의 카니발은 언제 시작된 걸까요? 앞서 말했듯 중세의 축제 형태는 이미 사라졌고, 현대의 카니발은 18세기 궁중 축제와도 거리가 멉니다. 쾰른이나 뒤셀도르프의 낭창난창한 과시를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 답은 19세기에 있습니다. 낡은 관습인 파스트나흐트 등이 처음으로 '재발굴'된 시기가 바로 그때였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쾰른입니다. 1820년대 프로이센에 합병당한 쾰른은, 바보들의 허용된 자유를 빌려 새 주인을 풍자하고 싶어했고, 그것이 현대 쾰른 카니발의 탄생 배경이 되었습니다. 다른 지역들도 뒤따랐습니다.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최초의 카니발 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슈바벤에서는 오래된 카니발 전통이 발굴되었습니다(일부 지역에서는 그 전통이 중세부터 이어져 보존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19세기는 카니발만의 발명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수많은 '오래된 전통'이 부활했다고 선전되었지만, 사실상 그때 새로 만들어진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바이에른의 전통 의상도 그렇고, 스코틀랜드 킬트가 유명해진 것도 하필 그 시기였습니다. 쾰른 등 초기 거점에서 출발한 카니발은 곧 유럽 대륙 전역으로 번져 나갔습니다. 유럽 밖에서는 리우 카니발이 20세기를 대표하는 볼거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남반구의 2월은 한여름이라 겨울을 내쫓을 필요가 없었기에, 원래라면 이런 축제가 성립하기 어려웠겠지만 말이지요. 신대륙의 또 다른 유명한 마디그라(Mardi Gras) 축제인 미국 뉴올리언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옛 프랑스계 가톨릭 도시라는 점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늘 그래왔듯 올해도 카니발을 '축하'할 예정입니다. 전혀요.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즐기시든, 모두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누가 아는지 모르죠. 열다섯 잔째 예거밤(Jägerbomb) 이후, 플리거리트(Fliegerlied)와 "Komm hol das Lasso raus" 사이의 잠깐 조용한 순간에, 오늘 배운 카니발 역사를 자랑스럽게 떠올리실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니 다정한 친구 여러분: Alaaf, Helau, Narri Narro, Lei Le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