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트 문명 쇠퇴의 배경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켈트 부족들 사이에 통일된 중앙 정부가 없었던 것이 결정적인 약점으로 작용했습니다. 광대한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었던 힘이 역설적으로 쇠퇴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분산된 부족들은 외부의 강대한 세력에 맞서 하나로 결속하지 못했고, 결국 각개격파당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로마 제국에 의한 단계적 정복
켈트족은 로마 제국에 복속한 최초의 민족이었습니다. 기원전 2세기 말 무렵에는 이미 갈리아 키살피나(알프스 이남 갈리아)와 켈티베리아가 로마의 정복지로 편입되어 있었습니다.
기원전 1세기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원정으로 알프스 이북의 트랜스알피나 갈리아가 함락되었고, 같은 시기 소아시아의 갈라티아 역시 로마의 속주로 격하되었습니다. 갈리아가 완전히 정복되자 로마 군단은 브리튼 제도로 진격했습니다. 이곳에서의 지배는 점진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서기 1세기 말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되었습니다.
게르만족의 압박
한편 같은 시기 중부 유럽에서는 상황이 달리 전개되었습니다. 이 지역의 켈트 부족들은 로마가 아닌 게르만 민족의 지배 아래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동쪽에서는 게르만족이, 남쪽과 서쪽에서는 로마가 밀고 들어오면서 켈트족은 점차 자신들의 영역을 잃어갔습니다.
라텐 문화의 종언과 켈트 예술의 명맥
이론적으로 이 시기는 라텐(La Tène) 문화의 끝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켈트 예술은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습니다. 대륙에서 밀려난 켈트 예술의 전통은 아일랜드 섬으로 옮겨져 명맥을 유지했고, 중세 초기에 이르러 이미 가톨릭 기독교 환경 속에서 화려하게 부활하게 됩니다. 켈트 크로스나 필사본 장예술처럼 독특한 형태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켈트의 흔적
아일랜드를 비롯해, 정복 직전까지 켈트족이 거주하던 여러 지역에서는 켈트 유산의 전통과 언어가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대표적인 지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 콘월(Cornwall), 맨 섬(Isle of Man),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 영국
- 브르타뉴(Brittany) — 프랑스
- 갈리시아(Galicia) — 스페인
- 갈라티아(Galatia) — 터키
이처럼 켈트 문명은 정치적 실체로서는 소멸했지만, 언어·문화·예술의 차원에서는 유럽 곳곳에 깊은 흔적을 남기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