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로마를 포위한 남자! 서고트족의 왕 알라리크

로마를 포위한 남자! 서고트족의 왕 알라리크

테오도시우스 대제 이후 역사 교과서에 이름을 남기는 로마 황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같은 시기 게르만 족장들의 이름은 꽤 많이 등장한다.

그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 시대에 두각을 나타낸 인물들이 훗날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의 기초를 세웠기 때문이다. 이번 글의 주인공 알라리크도 바로 그런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서고트족의 초대 국왕(Rex)으로, 서고트족은 이후 스페인을 지배하며 오늘날 스페인의 뿌리가 되었다.

스틸리코와의 삼각 구도

로마를 포위한 남자! 서고트족의 왕 알라리크

알라리크가 이끄는 서고트족은 로마군에 편입될 예정이었다. 당시 로마 제국군의 용병과 병사 대부분이 게르만 출신이었으니, 아군도 적도 모두 게르만인인 셈이다.

알라리크는 처음에는 로마 측 지휘 아래에서 싸웠고, 로마의 사실상 통치자가 된 스틸리코의 허락 아래 각지를 전전하며 전투를 치렀다.

* 흥미롭게도 스틸리코 자신도 반달족(Vandals)의 피를 이은 게르만계 인물이었다.

당시는 아직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통치 시기였다. 알라리크는 황제의 조카딸과 결혼하며 화려한 대우를 받은 스틸리코와 달리 그런 특혜를 누리지 못했고, 이에 불만을 품었을 것으로 보인다. 테오도시우스가 죽고 10살 먹은 호노리우스와 18세의 아르카디우스가 서로마와 동로마의 제위에 각각 오르자, 알라리크는 그리스 땅에서 약탈을 시작한다.

약탈자 알라리크

로마를 포위한 남자! 서고트족의 왕 알라리크

동로마(비잔틴) 제국은 이 알라리크와 싸울지 말지를 고민하다가, 결국 그에게 군대 지휘관 자리를 내주었다. 이 일화는 당시 로마의 쇠퇴를 잘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한때 강대국 페르시아의 침공을 물리치고 세계의 패자로 군림했던 그리스 도시들이 아무런 대책 없이 유린당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알라리크에게 유린당한 지역에는 고대부터 유명했던 스파르타와 아테네도 포함되어 있었다. 문명의 쇠락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를 유린한 알라리크는 이탈리아로 방향을 돌려 약탈을 시작했다.

기회주의적인 동로마 제국과 달리, 서로마 제국의 사실상 통치자였던 스틸리코는 강경하게 맞섰다.

폴렌티아 전투에서 알라리크는 스틸리코에게 패배한다.

뜻을 이루지 못한 알라리크는 스틸리코가 다른 곳에 신경 쓰는 틈을 타 서로마 영토를 유린했지만, 402년 베로나 전투에서 또다시 스틸리코에게 패했다.

408년 스틸리코의 처형은 알라리크에게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숙적을 잃은 알라리크는 북부 이탈리아를 유린하고 마침내 수도 로마를 점령했다. 로마가 외적의 손에 함락된 것은 기원전 390년 갈리아인의 침입 이후 약 800년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 행위는 호노리우스 황제와 그의 신하 올림피우스가 게르만인들을 학살한 데 대한 보복이기도 했다. 알라리크는 로마 시민들을 학살하지는 않았다.

대신 도시를 약탈하고 재물을 거두어갔으며, 일부 지역에 불을 질렀다.

이 기간 동안 로마 황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방관하고 있었다. 로마 제국에는 더 이상 싸울 군대도, 이끌 장수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 무렵 로마 황제의 누이 갈라 플라키디아는 납치되어 알라리크의 후계자 아타울프의 비가 되었다.

실컷 약탈을 즐긴 알라리크는 만족한 채 북쪽으로 돌아가려던 참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40세 전후였다고 전해진다.

알라리크의 무덤은 이탈리아 코센차를 흐르는 부젠토 강의 강바닥에 마련되었다고 한다. 부하들은 강물을 잠시 돌려 무덤을 만들고 다시 물길을 되돌렸으며, 무덤의 위치를 비밀로 하기 위해 함께 일한 노예들까지 모두 처리했다고 전해진다. '영원한 도시' 로마를 함락시킨 정복자의 최후답게, 극비리에 치러진 장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