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교과서에서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인물로 거의 빠짐없이 언급되는 오도아케르. 그러나 정작 그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로마의 문화와 관습이 사실상 소멸된 이 시기에는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전통 자체도 함께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기원전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대의 기록이 오히려 더 상세하기까지 합니다. 역사란 참으로 아이러니한 학문입니다.
출신은 미상, 그러나 게르만인임은 분명하다

로마 제국의 몰락과 함께 시대의 주역은 라틴인에서 게르만인으로 넘어갑니다. 알라리크, 겐세리크 등 이 시기에 이름을 남긴 게르만 지도자들은 각 부족의 족장이자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게르만인인 오도아케르는 이들과 달리 특정 부족의 왕이 아니었으며, 심지어 어느 부족 출신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습니다. 스코리족 출신이라는 설 등 여러 가설이 있을 뿐입니다.
서로마 제국 말기, 라틴계 로마 시민들은 전쟁에 나서기를 꺼렸고, 로마군은 게르만족과 훈족 용병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군대 안에서 게르만인은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오도아케르는 470년경 이미 로마 제국의 장군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당시 실권자였던 로마 관료 리키메르의 허락 아래, 동로마 황제가 보낸 황제 안테미우스와의 전쟁에 참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다음 무대에 등장하는 것이 476년,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의 폐위입니다. 오도아케르는 황제를 폐위시킨 뒤 황제의 상징물들을 동로마 제국으로 보내며 서방의 황제직을 반환했습니다.
오도아케르는 다른 왕조의 창건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황제가 되지 않았고, 왕을 자칭하지도 않았습니다.
동로마 제국은 서로마의 몰락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듯, 황제 제논은 오도아케르에게 '파트리키우스(Patricius)' 칭호를 내렸습니다. 본래 귀족을 가리키던 말이지만, 이 시기 게르만 지도자들에게 자주 하사되던 작위로, 왕으로 공인하지는 않으면서 일정한 통치권을 인정해 준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한편 동로마는 이미 율리우스 네포스를 서로마 황제로 임명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네포스는 원로원이나 교황 레오 1세와도 조화를 이루지 못했고, 결국 암살당하는 비극을 맞습니다. 일부 기록은 이 암살의 배후에 오도아케르가 있었다고 전합니다.
팍스 바르바리카
오도아케르는 로마 제국을 무너뜨렸지만, 통치 기구는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실제로 그가 집권하기 전부터 '제국'이라는 명칭은 이미 형해화되어 있었고, 통치에 큰 지장은 없었습니다.
그는 원로원을 존중하고 행정은 관료들에게 맡겼습니다. 대신 군사는 자신이 이끄는 게르만 군단이 담당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관료층과 원로원의 환영을 받았고, 로마 시민들의 눈에는 오도아케르가 황제보다 오히려 더 '로마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나아가 그는 로마인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교황을 우대했고, 대외적으로는 각 게르만 부족과 평화 조약을 체결하여 '팍스 바르바리카(Pax Barbarica)'라 불리는 평화로운 시대를 성공적으로 열었습니다.
이 평화는 약 15년간 지속되었지만, 이 상황을 못마땅하게 여긴 이가 있었으니, 바로 동로마 황제 제논입니다.
제논은 동고트족의 왕 테오도릭을 지원하여 이탈리아 반도 침공을 부추겼습니다.
문무를 겸비한 군주라는 평가, 그러나 군사에서는…
오도아케르는 내정에는 뚜렷한 재능이 있었지만, 군사적 재능은 많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손초 전투와 베로나 전투에서 연달아 패배했고, 결국 라벤나에서 테오도릭에게 항복했습니다.
테오도릭은 처음에는 오도아케르의 목숨을 살려주겠다며 항복을 권유했으나, 그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고 결국 오도아케르와 그 일족을 모두 살해했습니다. 493년, 테오도릭은 라벤나에서 직접 오도아케르를 베어 죽였다고 전해집니다.
『로마 제국 쇠망사』를 저술한 에드워드 기번은 오도아케르를 문무를 겸비한 훌륭한 군주, 나아가 영웅이라고까지 평가했습니다.
476년은 정말 로마의 멸망이었을까
오도아케르가 서방의 황제를 폐위시키긴 했지만, 원로원 등 통치 기구가 그대로 남아 있었던 만큼 476년을 로마 황제의 멸망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설도 있습니다.
필자 역시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로마 제국의 멸망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혹은 테오도시우스 대제의 시대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 이후의 로마는 겉모습만 로마였을 뿐, 라틴인들은 이미 로마의 정신을 잃고 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