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313년 밀라노 칙령이란? 기독교 공인과 종교의 자유 보장의 모든 것

313년 밀라노 칙령이란? 기독교 공인과 종교의 자유 보장의 모든 것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비롯한 각종 시험에서 "기독교는 밀라노 칙령에 의해 국교화되었다"는 OX형 문제가 자주 출제됩니다.

정답은 X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지만, 밀라노 칙령이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국교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애초에 밀라노 칙령은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를 공인한 것이며, 로마 제국 내에서의 종교의 자유를 확인한 것이 정확한 이해입니다.

또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반포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콘스탄티누스와 리키니우스가 밀라노에서 회담을 가졌을 때 발표한 공동 선언입니다. 따라서 이를 콘스탄티누스 단독의 업적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밀라노 칙령'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왜 로마 황제들은 기독교를 탄압했을까?

밀라노 칙령 당시 로마 영토 내 기독교 신자 수는 약 5%로 추정됩니다. 세계사 교과서 용어집에서는 밀라노 칙령 발포의 이유를 "증가하는 신도들을 달래기 위한 정치적 조치"로 보고 있습니다.

밀라노 칙령이 발포된 이유는 예로부터 여러 로마사 연구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어 왔지만, 아직까지 정설은 없습니다.

다만 역대 로마 황제들이 기독교를 탄압한 이유에 대해서는 대체적인 합의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로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신들에게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로마 황제는 인페라토르(로마 제국 최고 군사 지휘관)이자 동시에 폰티펙스 막시무스(최고 사제)였습니다. 이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폰티펙스 막시무스에 임명되고, 그 지위를 물려받은 옥타비아누스가 초대 로마 황제가 된 데서 비롯됩니다.

카이사르 본인은 유대인의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등 종교적으로 관용적인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후 로마 황제들도 이 노선을 따랐지만, 기독교인들은 기독교 신자라는 이유가 아니라 로마법이 규정한 의식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을 학살한 네로조차도 로마 대화재를 일으켰다는 죄목으로 처형한 것이며, 순수하게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박해한 황제는 상대적으로 드물었습니다.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는 오현제 시대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는 국가 주도보다는 민간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군인황제 시대에 들어서면서 황제가 주도하는 기독교인 탄압도 늘어나게 됩니다. 사산 제국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포로로 잡힌 발레리아누스 황제는 기독교인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탄압을 감행한 것은 군주정(전제정치)을 시작한 디오클레티아누스와 그의 부제였던 갈레리우스였습니다. 두 사람은 최악의 폭군으로 평가받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기독교를 탄압한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원수정(프린키파투스)에서 군주정(도미나투스)으로 전환하면서 자신을 유피테르 신과 동일시했습니다. 이것이 소위 황제 숭배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유일신 YHWH만을 섬기는 기독교인들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여러 차례 전환을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자 결국 억압에 나섰습니다.

그는 신자들을 직접 처형하기보다는 교회를 파괴하고 의식을 금지하며 집회의 자유를 부인하는 방식으로 탄압했지만,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밀라노 칙령 불과 10년도 되지 않은 305년에 퇴위했습니다.

왜 '밀라노 칙령'이 발표되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다양한 학설이 존재합니다.

  •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그리고 아버지?)가 기독교인이었다
  • 제국 통치에 편리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콘스탄티누스 역시 기독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는 죽기 직전에 세례를 받았고, 유해는 기독교 시설에 안치되었습니다. 또한 새 도시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했을 때 로마 신들을 숭배하는 신전이 아니라 기독교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심지어 콘스탄티노플에 도시를 세울 당시부터 기독교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국교화하지는 않았지만, 기독교 사제가 되면 세금을 면제해 주는 등 명확한 보호 정책을 폈습니다.

또한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헬레나는 은밀한 기독교 신자였던 것으로 보이며, 현대에는 그의 아버지 콘스탄티우스 역시 실제로는 기독교인이었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기독교를 박해한 인물의 부제가 기독교인이라면 아이러니하겠지만, 서방의 황제들은 동방과 달리 거의 탄압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기독교 신자 대부분이 제국 동부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훗날 기독교권이 된 지역보다 훗날 이슬람의 지배를 받게 된 지역에 더 열성적인 기독교인이 많았다는 점은 흥미로운 대비입니다.

콘스탄티누스 본인이 기독교인이었는지는 결국 알 수 없지만, 제국 통치에 편리할 것이라고 확실히 생각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콘스탄티누스의 후계자들도 그 노선을 따라 기독교인들에게 보호를 베풀었습니다. 소위 성직자들은 세금이 면제되었고, 마침내 392년 기독교는 국교가 되었습니다.

첫 번째 이슬람 제국의 결속이 단단했듯이, 하나의 신으로 결속된 사람들은 강력합니다.

이를 잘 알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통치의 도구'로 활용했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로마 제국에는 라틴인, 누미디아인, 무어인, 갈리아인, 게르만인, 아랍인 등 매우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민족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은 종교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합리적인 판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부터 너희가 믿는 종교가 기독교든 그 외의 어떤 종교든, 각자 자신이 믿는 종교를 믿고 그에 수반되는 의식에 참여할 완전한 자유를 부여한다. 지고의 존재, 신들 중의 신이 은혜와 자선을 통해 제국의 모든 주민을 화해로 이끌기를 바란다."

밀라노 칙령은 로마의 관용 정신의 표현

본래 로마는 관용(Clementia)의 나라였습니다.

로마는 재산이 보장되고, 직업·표현·신앙이 속박되지 않는 나라였습니다.

밀라노 칙령은 무언가를 강요한 칙령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로마의 관용 정신을 표현한 것에 불과합니다.